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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와우 Mar 24. 2022

어제와 다른 오늘

불편함 없이 웃게 되는 순간.

'아빠의 장례가 끝나면 나도 자연스럽게 아빠를 잊게 되는 것인가?'의 질문에서 지금의 글 들은 출발 했다. 전혀 납득되지 않았고 '아니'라는 분명한 답이 있었기에 나는 아빠의 떠남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글을 썼다. 어젯밤 두 번째 글을 쓰면서 '나는 아빠 딸이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란 결론에 닿았다. 그 사실이 많은 것을 씻어내주었다. 아빠와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 내 이별의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닌지 들에 대한 의문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힘들어도 아닌 척, 외로워도 아닌 척의 대가였던 아빠를 닮아 나는 상실에 허덕이진 않았다. 아빠도 나도 잘 사는 것이 서로의 바람일 것이라 생각하며 일상을 지켜냈다. 눈물이 나면 흘리고 슬퍼도 했지만 편하게 풀어내진 않았다. '못했단' 것이 아니라 '않았다'라는 말이 어울리게 나는 조절을 하고 있었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이게 맞나?'란 의구심과 감정의 혼란스러움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그런데 거기서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에 대한 이유를 찾으니 정리가 되었다. 내 절반의 DNA. 엄청나게 사랑했던 아빠. 그 아빠의 딸이었기에 나는 그랬던 것이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내가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나에게 정말 맞는 것인가? 에 대한 확신은 마음이 알려준다. 어젯밤 글을 마무리 짓고 가슴에서 작은 폭죽 하나가 터진 듯했다. '아!'라는 탄식이 흘렀다. 며칠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무게가 훅 덜어져 나갔다. 잠이 들 때에는 '내일 아침 달리고 난 후 웃을 수 있을까?'란 질문이 서슴없이 들었고 그게 마지막 도장이 될 것임을 짐작했다. 새벽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뛰기 시작하면서 느꼈다. 가벼운 발의 움직임, 깊이 들이 켜도 통증 없는 호흡, 무엇보다 뛰는 순간부터 피어오르던 미소. 그렇게 확인 도장을 쾅 찍고 어제와는 달라진 오늘을 산다. 너무 웃으면, 너무 아무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던 불편함을 덜고 웃음과 감사, 브라보가 함께하는 일상을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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