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알고 있으려나. 한 달여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아빠가 집으로 왔을 때 나는 반길 수 없었다는 걸. 몸부터 정신까지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모두 갖게 된 아빠를 나는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빠가 돌아왔어!'라는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반길 수 없었어. 그런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사람은 나였으니까. 나에게 흘렀던 무거운 공기, 굳은 얼굴, 크게 쉬어지는 숨을 보며 아빠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빠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에게 두려움이었어. 잠을 못 자고 일을 못하게 되는것보다 읽고 쓰고 달리며 차곡차곡 쌓아온 일상의 안정감이다시 흔들릴까 무서웠어, 두려웠어. 갑작스러운 저혈당에 먹인 꿀 한 숟가락이 아빠 숨을 막고앞, 뒤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답답한 마음으로 치고 올라올 때면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혐오적인 생각이 가득했어. 나를 향하고 아빠를 향한 화가 시간을 덮을 때면 아빠는 좋아질 것보다 어디까지 변해갈지 보기 싫고 무서웠다. 나는 그게 영원할 것처럼 시기를 버티지 못하며 아빠를 보냈어.
알았지, 알고 있었어.
아빠가 집에 있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든 집에서 회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퇴원 전부터 가족들과 논의해 병원이든 시설이든 케어가 가능한 곳으로 모시자는 것이 합의였지만 그 결과를 아빠에게 알리고 이행하는 건 내 몫이었어. 나는 참담했다. 아빠가 요양원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흔들리는 눈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차마 말을 거는 것조차 죄스러워 "아빠 미안해"란 말 밖에 뱉어 내지 못했을 때, 아빠가 느꼈을 마음은 나와 같은 참담함이지 않았을까?. 아니, 더했을 테고 '여기 싫다, 데려가라'라고소리치고 싶었겠지만 "별 말을 다한다"란 한 마디로 아빠도 모든 걸 일축했다. 그렇네, 아빠와 나는 또 그렇게 닮아있었네. 서로 미안하고 서로 서러워서.
근데 아빠, 잔인한 것은 만약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아마도 나는 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거야. 내 삶을 위해 아빠를 놓아둘 거야. 무서울 만큼 이기적인 나지. 아빠가 떠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의미 없지만 굳이 다시 반문하여 같은 답을 확인하는 내가 말이야. 문득 아빠도 나와 같은 '극한의 이기심'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 싶네.
아빠 나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이라도 그런 나를 미워하진 않을래. 누군가 '산 사람은 사는 거야, 다른 이들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라고 편 들어주지 않아도 그게 한 사람의 본연의 모습이라 인정할 거야. 그런 선택으로 일구어 놓은 현실을 부끄럽지 않게 더 잘 살아갈 거야.
언젠가 1945년 태생의 삶, 전쟁, 피난, 민주화, 금융위기 모든 것을 겪으며 산 삶에 '억울하지 않아?'라고 물었던 때가 있었지. 아빠는 "그땐 그런 거 몰랐어. 그냥 가족이 있으니까 그랬던 거지"라 답했을 때도 "나는 억울해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했어. 그게 아빠와 나의 차이. 우리의 다른 점인가 보다. 어쩌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사랑, 삶에 대한 자세, 희생의 크기 그런 것들이 세대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란 생각이 들기도 해.
사랑하는 아빠, 오늘은 아빠와 나의 차이를 알았던 날이다. 돌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그때의 세세한 감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숨이 막히게 눈물이 흐르지만 이내 정리가 되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고 편안해져. 이 시간이 감사해. 잘 지내고 있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