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일이 끝나니 많이 지쳤어. 오랜만에 오빠와 가게 마감까지 하고 나니 8시가 다 돼 가더라고, 배도 너무 고프고 피곤해서 '맥도널드'에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어. 아이들이 저마다 먹고 싶은 것을 시키고 우리도 배가 고파서 인지 양껏 시키고 나서 먹으려는데 윤이가 그래, "엄마 이것 좀 해줘". 햄버거를 먹기 좋게 포장지로 싸 달라는건데, 순간 아빠 생각이 나더라. 집에서 가끔씩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펼쳐진 종이 위의 햄버거를 어찌할 줄 몰라서 쳐다만 봤던 아빠. "아빠 이렇게 싸서 먹으면 손에 안 묻어"하며 싸주던 나를 묘하게 쳐다보던 아빠. 아빠 눈 빛엔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나?'와 '거 참 야무지게도 싸는구나.'라는 두 의미가 있는 듯했어. 맞았을까 아빠? 이후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아빠는 슬쩍 나에게 햄버거를 밀었고 나도 아무 말 없이 먹기 좋게 감싸드렸지, 사실 나는 그때 '아빠가 윤, 현과 다를 바 없구나. '아이'야 아이.' 하곤 씁쓸함과 작은 한숨의우려스러움이 겹쳤었다. 아마도 나는 달라지는 아빠를 확인하는 순간마다 그걸 밀어내고 싶었나 봐. 아빠가 변하는 게 참 싫었나 봐.
윤이가 말을 건네는 순간 손은 자동적으로 움직였지만 생각과 마음은 잠시 정지 상태가 되었어. 그렇게 불현듯 아빠가 떠오를 때면 잠시 정지상태가 되곤 해. 그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마음 안에서 무엇인가 탁!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야. 숨이 살짝 막히기도 하고 말이야.
꽃
꽃이 핀다 아빠. 매일 아침 뛸 때마다 마지막 숨을 고르다 보면 주변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하는데 요샌 그렇게 꽃이 보여. 마른 가지들 사이사이, 끝마다 노랗게, 또 아가손처럼 연하디 연한 연둣빛이 묻어나는 꽃봉오리들이 보여. '꽃이 피는구나'하고 중얼거리면 또 가슴속에서 뭔가가 훅! 하고 올라와. 가슴이 울렁여. 굵은 용 한 마리가 가슴 여기저기를 치고받는 것처럼 요동친다 해야 할까? 숨을 크게 쉬지 않으면 그게 울음이나 괴로움으로 나를 덮칠 것처럼....
아빠가 꽃 피는 봄이 오면 나오고 싶다 했잖아. 그렇게 원장님과 약속했잖아. 꽃 피면 나가자고... 나들이 가자고... 그게 그렇게 마음에 울어, 깊은 산에 공명이 일듯 그렇게 마음에서 끊이지 못하고 울려.
얼마나 그 시간을 기다렸을까? 작은 방, 학교 옆면만 보이는 좁은 창 철제 담장에 얽히고설킨 꽃나무의 가지를 얼마나 바라봤을까? 그게 마음이 아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몇 달 안 되던 요양원 생활에서 그래도 더 자주 얼굴 보고 밖에도 나와보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럼 좀 더 사셨을까? 기쁨이 있어서, 희망이 있어서 좀 더 살고 더 빨리 회복했을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데 아직도 나는 내가 헷갈려, 아픈 아빠와의 시간도 아쉬운 걸까? 건강했던 아빠와의 시간들만을 그리워하는 걸까? 나를 괴롭히는 질문인데 끊임없이 하게 돼. 아직은 어떤 답이 나오질 않아. 괴로움도 이어져.
꽃이 피는데 마음은 계속 울렁여. 아빠와, 대답과 그리움이 섞인 울렁임이 꽃에 계속 묻어나.
옷
아빠 방을 정리했어. 언니와 같이 할까 하다가 그냥 혼자 했어. 언니가 힘들어하는 것도 보기 힘들어서. 그냥 나 혼자 매몰차게 했어. 사계절이 있는 곳에, 한 집에서 분명 같이 살았는데 아빠와 나의 옷가지는 참 다르더라. 두 팔로 크게 안으면 두 번이면 끝날 아빠의 옷 뭉텅이더라고. 한 여름 전까지 교복처럼 입었던 얇은 패딩 잠바, 어두운 피부에 유난히 튀었던 붉은 맨유 티셔츠(이건 진짜 안 어울렸었어), 내가 고등학교 때 사줬던 낡은 코트까지.
손에 잡히는 것들에 아빠 모습이 겹쳤어. 좀 더 살갑게 굴 걸. 아빠가 옷 사러 가자 할 때 군말 없이 가서 같이 둘러보고 그럴걸. 바쁘다고, 한 푼이 아쉬워서, 결제해야 할 돈이 부담되어 아빠를 등지고 주변만 어슬렁거렸던 그런 날들이 있었어. 창피하고 미안하고 부끄러워 아빠. 나는 그렇게 속도 그릇도 작은 사람이었어. 정리할 옷 뭉텅이가 여럿이었다면 이런 마음이 덜 할까? 별 것 없는 옷가지에서 아빠의 외로움이 보여, 모른척했던 딸 때문에 무안하고 외로웠을 아빠가. 그게 너무 미안해. 그게 너무 죄송해.
닭강정
아빠 방을 정리하는 날은 나도 모르게 맘이 가라앉아. 예민해지고 날이 서. 오빠에게는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아이들에겐 짜증을 내. 아빠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내 잘못과 미안함이 많이 보이는 공간에서 나는 나에게 화가 나있는 것 같아. 화를 어디에 풀 곳이 없어 제일 만만한 아이들에게 툴툴거리고 잘못 없는 사람에게 서운해하나 봐. 기분이 안 좋다는 말에 먹고 싶은 것으로 맘을 풀어주려 오빠가 달콤한 닭강정을 사. 저녁 식탁 위 달콤한 닭강정과 얼음 맥주 한 잔이 순간 웃음을 나게 해. 간사하고 바보 같지. 단순하고 멍청해도 보여. 근데 또 닭강정에서 아빠가 보인다. 유일하게 드시던 고기. 아빠가 확실히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
저녁 하기 싫은 날 "아빠 치킨 시켜 먹을까?" 하면 가끔씩이지만 "좋지~"라고 말할 때 나는 참 좋았어. 매번 저녁때마다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물으면 "아무거나 먹어"하던 답이 괜찮은 한 끼 못 만들어내는 무능함으로 들렸거든. 그런데 가끔씩 "좋지~, 어~ 잘 먹었다."란 말을 들으면빈 구석이 틈새 없이 채워지는 만족감이었어. 지금 생각하니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웃고 있었던 듯해.
달콤하고 짭조름한 닭강정, 분명 아빠는 좋아했을 거야.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고, 한 마리를 시켜도 다섯 식구 입을 거쳐 남아돌았던 치킨보다 닭강정을 아빤 정말 좋아했을 거야. 그리고 아이들이 잘 먹는 걸 보면 언젠가 "거 애들이 잘 먹던 거 있잖아. 그거 한 번 시켜 먹자"하고 말했을 테지. 다음번 아빠 만나러 갈 땐 닭강정을 사 갈까? 아빠 좋아할 거지?"거~ 오래간만에 맛있게 먹었다"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