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온 세상이 식물들의 짙은 초록으로 가득차는 계절이므로.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그 아래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는 그림자, 그리고 스르르- 자장가 같은 잎사귀들의 속삭임. 그 모든 것이 여름이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초록의 계절 속에서 나는 자연이 들려주는 조용한 기쁨을 배우고,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식물이 좋아서,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5년 전,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마곡으로 이사를 갔다. 비교적 가까운 당산이나 영등포가 아닌 마곡을 선택한 이유는 서울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식물원은 엎어지면 코가 아니라 배꼽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그곳에서 계절마다 바뀌는 꽃과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걷는 일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해질녘 벤치에 앉아 다홍빛으로 물든 호수를 바라보거나 새벽 안개 속을 달리는 일은 마치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디 사냐는 질문에 “저, 식물원 옆에 살아요.“ 대답하는 것도 퍽 마음에 들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 식물가게에서 ‘녹보수’라는 나무를 샀다. 여린 가지에 풍성하게 매달린 그 초록의 싱그러움을 집안에 들이고 싶었다. 집에서 키우기 좋은 녀석이라는 가게 직원의 말에 ‘그래, 집에 식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덥석 데려왔다. 하지만 애정 없이 돈 주고 사 온 생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통풍도 잘 되지 않는 거실 한쪽에 두고 나흘에 한 번씩 물을 퍼부은 탓에 과습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것이다. 식물의 잎이 타들어가는 것은 대부분 강한 햇빛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수분으로 인해 뿌리가 썩어 잎이 말라가는 과습 때문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바라보며 좋아할 줄만 알고 책임지는 법을 몰랐던 나는, 산 것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함께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화분을 내다 버렸다. 다시는 생명이 깃든 것들을 집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마곡에 사는 4년 동안 틈만 나면 식물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어쩌면 눈을 감고도 식물원 한바퀴를 다 돌 수 있을 것만 같던 즈음, 전세 계약이 끝났다. 서촌을 다음 거주지로 정한 뒤 집의 조건으로 가장 먼저 고려했던 건 바로 창문이었다. 큰 창이 있어 채광과 통풍에 유리한, 식물을 키우기 좋은 조건의 집을 바랐다. 말라버린 녹보수 나무를 버리면서도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끝내 버리지 못했다. 열심히 발품을 판 덕분에 지금은 거실의 큰 창을 통해 햇빛과 바람이 맘껏 드나드는 집에서 스무 가지의 식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식집사’가 되었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면 주말에도 아침 8시 이전에는 일어나 물을 준다. 강한 빛이 토양을 말려버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손으로 잎을 살살 흔들어주기도 한다. 식물에게 바람은 호흡이자 운동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줄기를 흔들어주기만 해도 그걸 바람으로 착각해 뿌리가 튼튼해지고 잎맥이 더 단단해진다. 이런 정보는 식물가게 사장님께 물어물어 얻는다. 물주기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 햇빛은 얼만큼을 필요로 하는지, 온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귀찮을 정도로 세세하게 물어 얻은 정보는 잘 정리해서 한쪽 벽에 붙여 놓는다. 그리고 새로 온 식물들이 우리집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수시로 들여다보며 잘 살아가도록 돕는다.
‘내 이런 지극정성을 너희는 모를 거야’
아니다. 알고 있다. 식물들도 사람처럼 ‘기억’한다는 걸, 식물가게 사장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화분을 같은 장소에 두면 빛의 방향을 기억하여 잎의 각도를 조절하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면 물이 들어오는 패턴을 학습해 수분을 흡수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그렇게 바람을 기억하고, 빛을 기억하고, 물을 기억하면서 식물들은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나의 돌봄이 전혀 수고스럽지 않다.
어떤 날에는 화분에 물을 주다가 문득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식물을 기르는 일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식물들이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을 필요로 하듯 어떤 사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얻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배려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서로 다른 온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관계는 쉬이 시들어버린다. 지나친 관심이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무관심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적절한 거리에서 빛을 비춰주고, 필요할 때 곁에서 바람이 되어주는 것.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나는 어땠을까.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충분히 배려하는 사람이었을까. 식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물을 자주 주는 것을 관심과 애정으로 착각했던 그때처럼, 내 감정만 앞세운 탓에 상대를 곤란하게 하진 않았을까. 나의 온도와 맞지 않는다고 심술을 부리진 않았을까. 책임지지 못할 말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기분이 좋든 나쁘든 간에 때가 되면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며 보살피듯, 누군가를 대할 때도 늘 한결 같은 마음이었을까. 지난 날을 돌이켜보다 괜시리 미안해지는 밤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방 안에 따뜻한 공기가 아직 남아 있다. 본격적인 여름이다. 커튼을 밀고 들어온 미지근한 바람에 여름밤의 냄새가 섞여 있다. 낮 동안 달궈졌던 나무와 흙,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식으며 내뿜는 냄새. 희미해서 없는 듯하지만 찬찬히 숨을 크게 들이쉬면 느낄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밤 짙은 초록의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