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저런 일한다

라는 말이 정말 중요한 이유


# 1. 공부해라


보통 공부하라는 말로 부모님 세대가 많이 했던 말이죠. “공부 못하면 저런 일 한다~” 저는 이 명제가 잘못됐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저 말을 하면 안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공부하면 시급이 높아지잖아..” “니 자식한테는 그런 험한 일 안시킬 거잖아..” 이런 식으로 은근한 무의식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오늘은 이 말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철학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우리의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대화 형식입니다)






# 2. 치열한 토론


A:

공부 못하면 저런 일 한다는 건 현실이잖아! 좋은 대학 가야 좋은 회사 가고, 편한 일 하지. 공부 안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해야하는 거 아니야? 이건 차별이 아니라 현실이야. 안타까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라고 우리 무의식이 말했습니다.) (제 의견이 아닙니다..)



B:

현실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인정. 하지만 그게 ‘공부 못한 사람’은 '가치 없는 일'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니야. 그러면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전부 개인 책임으로 돌려버리게 되거든.


어떤 애는 지방에 태어나서 학원도 못 다니고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라 두려움에 떨며 살기도 해. 가정폭력을 당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지. 그런 아이들이 편의점 알바를 하면 니가 공부 못해서 그런 거다.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걸까?



A:

그렇지. 지방이랑 서울이랑 교육차이가 크지.. 그리고 부모가 돈이 많냐 적냐에서 사교육 차이도 너무 큰거 같아.. 근데 지방에서 태어나더라도 인강을 들을 수도 있잖아? 그 옛날에도 지방에서 서울대 많이들 갔잖아.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가정폭력을 한다.. 이건 참.. 어렵네..


근데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대부분은 균등한 기회를 갖는다고 생각해



B:

맞아 극단적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친구들은 지금도 존재해. 단순히 극단적인 문제를 벗어나서 통계를 보자.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부모 소득이 상위 20%인 자녀는 SKY 진학율이 10% 이상이었어. 반면에 하위 20%인 자녀는 1% 미만이었어.


“공부 잘하면”이라는 전제가 사실 기득권에 이미 유리하게 설계된 게 아닐까? 적어도 결과는 개인 노력으로만 볼 수 없고 구조의 불균형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야. 어린 중학생, 고등학생 소년가장들은 동생도 키우고, 알바해서 생활비까지 벌어야 해. 그런 경우들까지 다 싸잡아서 공부 못하면 저런 일한다..고 하면 그건 너무 폭력적인 말이 아닐까?



A:

오케이.. 그건 반박이 안되네.. 데이터도 명확하고, 그런 식으로 싸잡아서 낮잡아부르는 건 잘못된 것 같아. 모두가 출발점이 공평할 수 없다는 건 인정할게.


그러면 공정성은? 만약에 출발점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공부를 많이 한 아이랑 공부를 적게 한 아이랑

시급에서도 차이가 날 거고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래서 "공부를 안하면 저런 일한다"고 하는 건 불공평을 합리화시켜버리는 말이 아니라 공정성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해.


솔직히 다들 그런 말 하면 안된다 하지만 누구나 속으로는 그런 생각하잖아. “공부 안하면 힘든 일 해야해” “공부 안하면 남들이 싫어하는 일 해야해” 왜냐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 고소득 직장은 배워야, 노력해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은근히 속으로는 다들 그런 생각할 걸?



B:

맞아. 속으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이게 정말 중요한 지점이야. 바로 여기가 “공부 안하면 저런 일 한다”는 명제가 정말 무서운 지점이야. 들어봐..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해도 자식이 그런 일을 하면 말릴거야. 그 직업을 하는 건 괜찮지만 내 자식이 하면 안되는 일이라는 위선적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거든?


그러면 그 직업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구조가 생겨나. 공부 못한 애들이 하는 일이니, 최저시급은 낮아도 돼. 고생할만 하니 고생해도 돼. 그 사람들은 보호할 필요 없지, 노력을 안 했는데. 이렇게. 이건 우리가 그들을 낮게 보고 차별하는 거지?


그러면, 우리는 언젠가 차별받을 일이 없을까? 지금 젊다면, 나이가 들겠지? 지금 건강하다면, 아플 수도 있겠지? 지금 비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이 될 수도 있겠지? 지금 유명하다면, 잊혀질 수도 있지? 누구나 갑자기 약자가 될 수 있어. 우리가 은근한 무의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할 때, 그 차별은 돌고 돌아 우리를 차별하게 돼. 그래서 차별은 정당화되면 안돼.


그래서 우리가 이런 무의식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고쳐 나가야 해. 왜? 우리도 그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인간은 약자를 돌보고, 그 안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야 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거 들어봤지? "악은 평범성 속에서 자란다. 생각없이 관성대로 행동하는 것, 그게 진짜 위험이다."






# 3.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어떠신가요? 조금 와닿는 말들이 있으셨나요? 우리가 길거리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 부모님한테 이런 말을 들어왔습니다. “공부하면 저런 일 한다.” 근데 이 말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당한 처우를 정당화하게 되죠.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 일들도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들이죠.


누구나 다양한 이유로 약자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차별을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줘야합니다.


“공부 못해도 누구나 다 쓸모가 있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거야”

“내가 편한 건, 누군가가 불편해줬기 때문이야. 감사해야겠지?”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어 그게 남들을 존중해야하는 이유야”

“공부보다 중요한 게 남들을 존중하는 거야”


‘어른 김장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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