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오디세이>는 씽큐ON 12기 마지막 선정도서다. 책 소개를 보자마자 읽기가 꺼려졌다. 분명 아픈 환자들의 이야기가 한가득 나올 테니까. 나는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힘들다.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아플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책을 읽으면 안 되는데..
(이 책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었다.)
이 책의 절반은 심장병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유전학 교수이자 심장내과의사이기에 아무래도 선천적 심장질환 환자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릴라니라는 소녀는 비대심근병증으로 심장이식을 받았으나 그 이식받은 심장이 또 유전적 결함이 있는 심장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가. 기가 막혔다. 그녀는 감사 비슷한 마음과 분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리키라는 청년은 심장에 자란 암 종양 때문에 3번이나 수술을 받고 또 재발되어 4번째 절제수술이냐 아니면 심장이식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내가 간략하게 정리해서 그렇지 사실 환자들이 겪은 과정은 훨씬 더 우여곡절이 많다. 읽는 내내 숨 막혔다. 책에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구절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날, 나는 마음을 비우고 무시무시한 의사의 경고도, 진심 어린 호소도 다 때려치우기로 결심했다. 그 대신 우리 둘은 편히 앉아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의 평생을 지배해 온 병과 병원 관련 일들을 그 시간만큼은 모조리 잊었다. 그런 것들은 진정한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지금껏 리키를 버티게 한 건 음악이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기타를 칠 줄 알았고 작곡도 했다. 또 그가 말하길, 언젠가는 가까운 전문대에서 음대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 절제수술이냐 이식이냐를 고민하는 대신 잠시나마 오롯이 음악에 몰두하면 안 되는 걸까? 집안을 벗어나 학교로 나가서 기타줄을 퉁기고 곡을 쓰면서 말이다.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책을 읽던 나는 딱 한번 이 대목에서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때 행복하다. 너도 나도 같은가 보다.
내가 만약에 유전적 희귀질환을 앓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억울한 마음에 미칠 것이다. 과연 뭐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뭐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의료진이 아닐까?
진심을 다해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누구보다 환자의 상태를 신경 써주고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이 있다면 억울한 마음에 위로가 될듯하다. 역시 사람이 전부다.
책을 읽으며 나는 건강염려증이 심해졌다. 기분이 한없이 다운된다. 나도 가끔 심장 박동이 엇박이 나는 것 같은데, 죽을병이면 어떡하지? 의심과 공포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나처럼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유전자 기술에 관심 있다면 <유전자 임팩트>를 읽는 게 훨씬 낫다. 어쨌든 완독 했다. 빨리 도서관에 반납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