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

—『나쁜 사마리아인들』, 『팩트풀니스』, 『호모데우스』, 『사피엔스』 등

by 최우주

[독서 에세이] 『나쁜 사마리아인들』, 『팩트풀니스』, 『호모데우스』, 『사피엔스』 등을 읽고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 마다가스카르 편)



<1>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


육아에 치여 부부의 낙이 없어졌다. 달리 말하면 부부의 유일한 낙이 아이가 됐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럴 리가!” 했으므로 우리는 주에 한 번은 육퇴 후 함께 예능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고른 프로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 마다가스카르 편>(2023)다.


우리는 신혼 때 <태계일주 2: 인도 편>을 봤다. 아내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덱스를 흐뭇하게 봤고, 나는 뭐라도 즐겁길 바랄 따름이었다. 시즌 3에도 기존의 멤버 즉, 기안84, 덱스, 빠니보틀이 나온다고 하길래 이 예능을 제안했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남미와 인도를 다녀온 <태계일주> 팀은 더 색다른 여행지를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다. 이곳은 어디인가? “‘원시의 바다’를 품은 지구의 마지막 오아시스”이자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신비한 땅”(프로그램 소개 글 中)이다.


동생들보다 먼저 출발한 기안84는 우선 에티오피아로 간다. 바로 갈 수 있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이다. 경유하여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해변 도시인 모론다바로 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용하는 비행기는 소형 경비행기다. 광역버스만 한 크기여서 기안84는 기겁한다. 게다가 기상 상태도 매우 나쁘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출발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인근 호텔에 머물게 되는데 이곳은 수시로 정전이 된다. 정전이 될 때마다 기안84는 흠칫하지만, 현지인들은 ‘뭐?’한다.


다음 날 드디어 경비행기가 뜰 수 있었고, 모론다바로 갔다. 하지만 여기도 종착지가 아니다.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해변 마을인 벨로수르메르로 이동한다. 뭘 이렇게까지 가나 싶지만, 기안84에게는 로망이 있다. 바로 작살 낚시를 하는 것. 그 문화를 여전히 간직한 이들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길고 고된 이동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장장 43시간이 소요된 여정이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비밀의 섬에 왔고, 고대하던 오지의 현지인을 만난다. 그런데 세상에


현지인은 FC 바르셀로나의 저지를 입고 있다!


방송은 “대자연”, “원시”, “태초”, “신비” 등에 빠져서 현지인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도통 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목도하고 있다.



<2> 신자유주의자=나쁜 사마리아인들?


꽤 예전이지만,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토론하는 시민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요지는 부자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경제 성장의 방식이 기만이라는 것이다.


경제 부국의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자유 무역이 모든 국가에게 가장 이로운 체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개발도상국과 최저개발국에게도 동참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장하준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부국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그 반대다. 이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면서 고도화시켰고,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지배력을 높였다.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자유 무역은 단적으로 말해 개발도상국들이 생산성 증대 효과가 낮고, 따라서 생활 수준 향상 효과도 낮은 부문들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쉬운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통해서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은 거의 드물고, 성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사용해 온 나라들이다.”(『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2023, 119~120쪽)


그래서 장하준은 이러한 경제부국의 행태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도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막차를 탔다. 대한민국은 냉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국이기도 했지만, 체제 경쟁 속에 혜택을 받은 나라이기도 했다. 우리 역시 자국의 산업을 세계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며 잘 육성했고,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 냈다. 스마트 폰이라는 최근의 사례만 봐도 이와 같은 대응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 명성의 정점에 스마트폰이 있다. 그는 휴대용 전화기를 전화 기능이 있는 컴퓨터로 바꾸었다. 그 제품이 바로 애플사의 아이폰이다. 2007년 1월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 새로운 기기를 우리나라의 소비자는 한동안 사용하지 못했다. 2009년 11월 28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KT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2009년은 우리나라 기업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한 해이다. 바로 삼성 갤럭시가 그해 4월에 출시됐다.


그러니까 한발 늦은 우리 기업을 위해 정부는 외국 신제품의 국내 유입을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규제했다. 애플사에서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소문은 업계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열심히 개발 중이었다. 상품에 대한 이와 같은 통제는 소비자에게 불합리한 처우지만,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안이 된다.


사실 자유 무역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론가들 중에도 장하준의 비판을 일부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 효과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독서 모임에 참석했던 경제학 전공 대학원생도 이를 언급했다. 다만 그 경제학도는 이러한 방향이 우리에게는 나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글로벌 체제가 기여할 수 있는 바도 있다. 각국이 맡은 바를 열심히 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면, 오지에도 글로벌 상품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글로벌 분업화


경제부국이 걷어찬 사다리를 다시 가지고 와서 기어 올라오는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무역의 룰을 어기고, 자국의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꾸역꾸역 올라온다. 미국은 심기가 불편하고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중국을 개탄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게 너네가 하던 방식인데?”라고 항변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지만, 점점 우리의 경쟁국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그렇다.


중국이 부자나라의 하청을 받아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때는 좋았다. 중화민국이 세계 시장에 쏟아내는 값싼 상품과 서비스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그러다 선을 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드론, 전기차, 우주공학 등 최첨단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부국의 몫으로 도상국이 해서는 안 된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성장에 따라 자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는 상황이기에 기술을 고급화하여 지속적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긴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글로벌 분업화다. 시장 자유화 이론가들은 각국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부분을 맡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그래서 부자나라는 첨단 기술 개발을 하고, 인건비가 싼 나라는 노동력을 맡고, 자원이 많은 나라는 원자재를 제공한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를 하고, 일본은 소재‧부품을, 네덜란드는 장비를 제공하고 우리와 대만은 제품 생산을 맡는다. 반도체에 필요한 원자재는 중국 등에서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노동력도 보탠다(물론 각국에는 다양한 기업들이 있어서, 딱 이렇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거칠게 나눠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산업들이 글로벌 협력‧분업 체계로 돌아간다. 이렇게 최적화된 생산은 값싼 최종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보급된다.


이것이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의 사정이다. 사다리는 걷어찼지만,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주민에게도 글로벌 상품이 닿는다. 원조인지, 선물인지, 구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가는 것이다.



<4> 각별한 노력과 상당한 결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계로 왔을까? 갈수록 세상은 각박해지고, 갈등은 고조되고 있으며, 불안과 스트레스는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 쏟아지는 비극적 뉴스를 보고 있으면, 사회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드는데, 한스 로스링은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부제가 붙은 『팩트풀니스』(김영사, 2019)에서 한스 로슬링은 선입견과는 달리 인류의 복지가 상당히 증진되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절대다수의 나라에서 아동 사망은 드문 일이 되었다. 저소득 국가에서 조차 기대 수명은 62세에 육박한다. 그들 대부분이 먹을거리가 충분하고, 수질이 개선된 물을 이용한다. 다수의 아이가 예방접종을 받고, 많은 여성들이 초등학교를 나온다.(『팩트풀니스』, 49쪽) 삶의 질이 여전히 최악인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 사례다. 전 세계 인구 중 단지 9%만이 저소득 국가에서 살며, 이들도 극단적인 몇몇 경우를 빼면 대부분 비참하지 않다.(『팩트풀니스』, 50쪽) 이미 인류의 대부분은 중간 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에서 살고 있다. 중간층에 사는 50억 인구의 사람들은 고소득 국가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샴푸, 오토바이, 생리대, 스마트폰 등을 당연하게 소비한다.


『팩트풀니스』는 인류의 복지가 증진되어 왔음을 데이터와 통계를 활용하여 가시화한다. 한스 로슬링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음에도 확증편향으로 인해 망한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개선된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 과거 이미지에 계속 빠져있는 것은 인류 진보에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각별한 노력을 해왔고, 상당한 결과를 얻었다.


한스 로슬링은 생산과 관련해서도 인건비 절감을 위한 글로벌 아웃소싱은 좋은 방안이었다고 판단한다. 세계화를 통해 제조업은 점점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를 유치한 국가들은 부유해졌다. 서구 국가에서 신흥 국가로 진행된 이 흐름은 이제 새로운 대륙을 찾고 있다.


로슬링은 이제 아프리카가 새로운 생산 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 결정과 관련해서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을 버리고, 오늘날 최고의 투자 기회는 가나, 나이지리아, 케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팩트풀니스』, 360쪽) 또한 소비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역의 사람들을 단지 ‘가난한’ 사람으로만 치부하게 된다면 막대한 시장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팩트풀니스』, 52쪽)


나는 왜 <태계일주 3: 마다가스카르> 편을 보면서 의아했을까? 그곳의 현지인은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으면 안 되는가? 그럴 리가. 오히려 그것은 인류 복지의 증대일 수 있고, 우리 문명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한스 로슬링이라면 “봤지?” 했을 것이고, 작살로 잡은 물고기를 생으로 먹는 기안84의 행태를 보고는 “너희가 더 원시적으로 보이는데?”라며 농담을 했을 수도 있다. 오지의 현지인에게도 값싸고 질 좋은 재화가 필요하고, 또 그러한 상품과 서비스를 즐길 권리가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문제의 근원은 나다. 옷장과 서랍에는 쓰레기가 되고 있는 온갖 물건들이 있다. 일회용품도 문제지만, 아닌 것도 일회용품처럼 쓰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5> 기후변화


인류는 기후위기의 구체적 사태였던 코로나19 팬데믹을 겨우 넘었다. 그랬더니 생경한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 2025년 8월의 한반도는 관측 이래 가장 ‘핫’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7월도 그랬고, 6월도 그러했다. 한반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지구 평균 온도가 거듭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고 발표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함께 지키자고 약속했던 저지선인 1.5도(산업화 이후 온도 상승)에 이미 도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로 인한 여파 중 하나가 생태계 교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유발한 박쥐도 기후변화로 원 서식지를 떠나 남중국으로 들어온 녀석이었다.


작년 여름의 우리는 장마전선 대신 극한 국지성 호우라는 이례적인 현상을 경험했다. 재작년에도 그랬다. 그랬는데 남부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는 장마다운 비가 없었다. 강원 지역도 예년에 비해 강수량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아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자신의 복지 증진을 위해 달려왔고, 계속 달릴 예정이다. 그러니, 지구야, 아직은 버텨야해.



<6> 자본주의라는 열차


자본주의는 멈추면 곤란한 열차다. 자본주의의 엔진은 공장이고, 공장에서는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온 상품은 꼭 판매되어야 한다. 팔리지 않으면 자본가도 돈을 못 번다. 노동자는 공장에서는 생산자지만, 매장에서는 소비자다.


만약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져 상품이 충분히 팔리지 않으면, 상품은 창고에 쌓인다. 재고가 쌓이면 공장은 돌아갈 이유가 없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면 노동자는 필요 없고, 일을 잃은 노동자는 돈이 없기에 구매력은 더 떨어진다. 그렇게 악순환에 빠지면 공황이 온다. 물론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상품 가격을 낮추고 또 정부가 개입하는 등의 방안으로 자본주의는 유연하게 대처한다. 위기에서 탈피하면 상품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신기술이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발명하기도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고, 그러거나 말거나 공장은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꼭 필요하지 않은 상품도 생산해야 하고, 또 팔려야 한다. 쓸 만해도 적당히 갖다 버리고, 새 제품을 계속 사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광고는 중요하고, 유행은 거듭 발명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는 더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했고, 이것은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세계 각지에 쏟아질 수 있게 했다. 이제는 누가 어떤 신을 믿는지 혹은 어떤 정치체제를 지지하는지와 상관없이 함께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따금씩 경제위기와 국제전쟁을 겪기는 해도,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성공했을 뿐 아니라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했다. 수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 성직자, 유대교 율법학자, 이슬람 종법 해석가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그런데 은행가, 투자자, 기업가들이 등장해 200년 만에 정확히 그것을 해냈다.”(『호모데우스』, 김영사, 2017, 304쪽)


하라리는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평가한다. 단, “미래에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을 무시한다면”


그렇게 신자유주의는 승리했고 인류의 복지는 보다 안녕해졌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쓰레기를 생산해야만 굴러가는 문명이 됐다.



<7> 기후위기라는 망상?


2024년에 치러진 미국의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그는 재선에 실패하여 민주당의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설욕의 칼을 갈았다. 그 칼의 주요 방향 중 하나가 기후위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 위기라는 과대망상에 빠져 미국의 경쟁력을 망가뜨렸다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을 값싼 전기다. 값싼 전기는 어떻게 생산 가능한가? 그것은 신재생 에너지를 멀리하고 화석 연료를 가까이하면 된다. 미국은 막대한 양의 화석 연료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패권을 잡은 국가의 공통점은 독보적인 첨단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 개발에는 무지막지한 전기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가장 저렴한 전기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가 제일 유리하다. 미국은 그러한 역량이 있는 국가임에도 어리석은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트럼프에 따르면 이러한 전환은 다시 글로벌 패권을 잡으려는 유럽의 음모이고, 화석 연료가 부족한 중국 역시 이를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 기후협약을 (재)탈퇴했다. 그의 주요한 공약 중 하나가 값싼 화석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끔 규제를 없애는 것이었다.



<8> 인류세


기후 위기는 정말 망상일까? 얼 C. 엘리스를 비롯한 여러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속해서 증대해 왔고, 그에 따른 이상기온의 양상도 강화되고 있다.(『인류세』, 고유서가, 2021) 관련된 연구 자료가 워낙 많기 때문에, 트럼프도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촉발할 사태에 대한 상상력이 다른 것 아닐까? ‘지금의 기후 변화가 인류 멸절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웃기고 있네.’ 뭐 그런 생각.


나는 경상남도 김해 시민이다. 김해는 기후안심도시로서 항시 글로벌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지구 종말의 날을 세는 것이다. 직장이 부산에 있어서 자주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집으로 가기 위해 서김해 IC를 나와서 신호를 기다리면, 대형스크린의 숫자를 보게 된다. ‘앞으로 지구 온도 상승 한계점(1.5도)까지 4년 5개월 11일!’(2025.2.14.)


사실 너무 구체적이어서 당황스럽다. 이것은 기후위기시계(Climate Clock)로 독일 메르카토르기후변화연구소(MCC)의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2023년에 시작된 엘리뇨 현상으로 기록적인 기온상승이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기에, 올해(2025)의 기록이 중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확실한 건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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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상기구(WMO) 제공]


몇몇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1.5도 이상(보수적으로 잡아도 2.0도)이 되면 일종의 티핑포인트가 되어 돌이키기 힘든 기후재앙이 올 것으로 전망한다. 원래는 이러한 위기가 2030년대에 발생할 것으로 봤는데, 당겨졌다. 탄소 배출은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얼 C. 엘리스가 정리한 그동안의 과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 한계점에 도달하면, 해수면은 26~77㎝가 높아지고, 무엇보다 곤충과 식물, 척추동물 등의 서식지가 절반 이상 사라진다.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교란된 박쥐들이 남중국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발생한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이것은 거대한 변화의 예고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연구가 진척되면서 확인하게 된 것 중 하나가 종 다양성의 중요성이다. 과학계의 오랜 의문 중 하나가 안정적인 기후였다. 과거 40억 년 동안 태양에너지의 산출량이 무려 30%나 증가했는데, 지구는 그만큼의 영향을 받진 않았다. 제임스 러브록과 린 마굴리스가 유의미한 답을 찾았는데, 살아 있는 유기체가 집합적인 생물권으로 작동했음을 발견한 것이다. 즉,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고 생명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스스로 충족했다.(『인류세』, 39~40쪽)


생물권은 마치 온도 조절 장치처럼 작동하면서 지구의 기후를 조절한다. 가령 지구가 뜨거워지면 생물권은 냉각 효과를 만들어내며 반응한다. 예를 들어 유기체는 대기로부터 온실가스를 더 섭취하고 미세입자, 즉 에어로졸을 방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유기체는 태양에너지를 반사하는 구름 형성에 일조한다. 반면 지구가 차가워지면 생물권은 정반대의 효과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온실가스를 증가시키고 대기 중의 에어로졸을 감소시켜 온난 효과를 만들어서 냉각 효과를 상쇄한다. 이런 식의 ‘억제 피드백(negative feedback)’ 체계를 통해서 생물권은 지구의 온도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가 잘 작동하면 태양에너지 증가와 같은 외재적 과정이나 화산활동과 같은 내재적인 과정에서 비롯된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인류세』, 40~41쪽)


하지만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 변화로 생태계가 붕괴하고 종 다양성이 파괴되면 이와 같은 생물권이 기존의 방식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지구 시스템에는 ‘억제 피드백’뿐 아니라 ‘강화 피드백(positive feedback)’도 있다. 이 시스템이 기후위기를 높일 수 있다.


태양이 북극의 얼음을 녹일 때 지구 전반에 걸쳐 있는 얼음, 즉 ‘빙권’이 조절 시스템 역할을 한다. 태양에 노출된 바닷물은 태양 에너지를 잘 흡수하고, 바다 위에 있는 얼음은 태양에너지를 대부분 반사한다.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이 더 많이 노출되고, 그에 따라 열 흡수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얼음이 많이 녹을수록 온난화는 더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강화 피드백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인 ‘티핑 포인트’가 온다. 그 후에는 모든 얼음이 녹을 때까지 해빙이 계속된다.(『인류세』, 41~42쪽)

물론 그 지점이 정확히 몇 도이며,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파괴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확실히는 알 수가 없다. 나는 퇴근길에 종말의 디데이를 보지만, 매번 ‘에이, 설마’ 한다.



<9> 불확실한 기후위기와 확실한 경제 문제


2024년 11월, 제29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것은 역시나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신청이었다. 미국은 2022년 기준 약 48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전 세계 배출량의 13~14%를 차지했다. 이것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거대한 규모다. 1인당 배출량(2021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13.8t)은 중국(8.7t)보다 오히려 더 많다.(한국은 13.1t으로 세계 7위)[자료: IEA, EDGAR]


나머지 나라들도 국가 손익을 저울질한다. 파리협약에 가입한 195개 당사국 중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마감에 맞춰 제출한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했다. 환경주의자들과 기후학자들은 이번 회의가 국가이기주의로 만신창이가 됐다고 개탄했다.


정치인들은 불확실한 기후위기보다 확실한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고, 기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자칭 환경운동가인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단기간에 극적인 기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는 과장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리어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을 걱정한다. 너무 과격한 주장은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석유와 가스를 악마화해서는 안 되며, 이 자원은 여전히 적절히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고, 상용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조만간 우리의 일상에서 이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10> 같은 것을 봐도, 다른 미래를 본다.


우리는 같은 현상을 확인해도 전혀 다른 미래를 보는 이들과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이 근미래에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노동으로부터, 그리고 노화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지평으로 인류가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개발에 쏟아 부을 필요가 있다.


반면 누군가는 기후 변화로 인류 멸절이 코앞에 왔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 지금이라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탄소 배출 산업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데, 인공지능 로봇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각국은 여전히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글로벌 소비자들은 한 번 누린 상품과 서비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임스 러브룩은 기후위기가 너무나 시급한 문제이므로 차라리 적극적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기후협약을 탈퇴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을 접으려고 하는가? 더 비싼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재생에너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는 화석 연료가 부족한 유럽과 중국이 유포하는 음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더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에 기반한 초격차 기술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허풍이지만, 직면한 중국의 도전은 실감난다.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없다면, 결국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할 것인가가 선택지가 된다. 러브룩은 원자로와 방사선이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의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이므로 달리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즉,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원자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자고 힘껏 주장한다.(『가이아의 복수』, 세종, 2008)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가? 인류 멸절과 같은 기후 재앙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알 수가 없기에 다들 다른 미래를 보고 있고, 방안도 달리 나온다. 닥치면 어떻게든 해 나간 것이 인류이기에 그리 걱정하지 말라고 긍정론자들은 말한다. 탄소 포집 기술이나 핵융합 발전 등, 결국 과학기술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중한 것은 인류의 생존이라기보다는 우리 개개인의 삶이다. 기후 변화로 삶이 파괴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숱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기안84가 마다가스카르의 오지에서 만난 현지인도 FC 바르셀로나의 저지를 입고 있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화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다가스카르는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앓고 있다. 연달은 초강력 태풍과 최악의 가뭄 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이런 일이 더 빈번해 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역사의 진정한 교훈은 지금 우리의 세계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역사 연구의 의미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이며,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사피엔스』, 김영사, 2015, 342쪽)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기대대로 탁월한 인간 지능은 훌륭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기후학자들의 예견처럼 삽시간에 기후위기가 온다. 가이아의 잔혹한 복수였으므로 인간은 버틸 재간이 없다. 화성행 인류도 오래 가지 못했다. 지구종말의 디데이를 세어왔지만, 지구는 끄떡없었고 인간만 요단강을 건넜다.


‘인간의 빈자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지구 환경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진화‧발전하던 로봇들은 어느 날 무언가를 만나게 되는데!’


라는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 있다.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이다. 매우 흥미롭고 탁월한 작품이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SF의 세계에서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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