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찾아오는 기적
다 죽어가던 화분에서 새 잎이 돋았다. 작년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선인장이 오랜 시간 집을 비운 사이 말라죽고 빈 화분이 아까워 새로 심은 다육이었다. 수분을 한껏 품은 굵은 줄기와 플라스틱처럼 반짝이는 잎사귀가 무색하게 집에 오자마자 갈색으로 마르기 시작해 역시 식물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구먼 했다.
그랬던 화분이 크게 돌보지도 않았는데, 본래 잎을 다 떨구고 새 잎을 내보였다.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처럼 마른 줄기는 초록으로 통통하게 몸을 부풀렸다. 죽어가던 이유를 알 수 없었듯이 왜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왕 살아난 거 건강하게 자라라고 열심히 물도 주고 햇볕도 쐬어주고 작은 잎사귀도 닦아줘 본다.
지난주엔 본가 마당에 뱉어놓은 수박씨에서 꽃이 피었다. 작고 노란 꽃잎이 너무 여려 어떻게 열매를 맺으려나 하는 기우와 달리 꽃이 진 아래 손톱만 한 수박이 자리 잡았다. 아마 내가 먹었던 수박만큼 커지진 않겠지만- 여름이 다 끝난 마당에 맺은 열매가 이상 기후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기대하지 않아 더 대단한 생명의 집념이다.
다음 달이면 언니가 아프기 시작한 지 꼬박 일 년이 된다. 언니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고 있다.
말라가던 화분에 새잎이 난 것처럼, 가을이 다 와서도 열매를 맺어보려는 수박씨처럼 언니에게도 삶이 움트기를… 가을 바람에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