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가르쳐라
주저리주저리 나의 게임 교육 방법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대전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게임이 아이의 삶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느끼기에 게임은 단순히 오락의 수준을 넘어섰다. 청소년과 아이의 삶에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영역은 다른 독자적인 영역들을 침범하고 흡수한 지 오래되었다.
특히 교우관계에 크게 작용한다. 게임을 잘하는 아이는 또래집단에서 권력자로 대우받는다. 게임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면 "와 쟤는 진짜 다 잘하는 애야" 이렇게 칭송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축구랑 싸움 잘하면 인정받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게임이 그 강자를 판별하는 판독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게임은 더 이상 놀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한 통로이며, 그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잘해야만 하는 해결과제이다. 나를 뽐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자아나 다름없다. 축구를 하려면 돈을 주고 축구교실에서 해야 하고, 태권도 학원에서 돈을 받고 줄넘기를 가르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아이들은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틈새를 게임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공통된 욕구이다. 그러나 방과 후 학원에서 소통하는 것은 영 시간도 짧고 재미가 없다. 친구와 재미있게 놀고 싶은데 그 욕구는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 하원 버스가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게임의 세계에서 만나고, 게임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경쟁하는 것으로 친밀도를 쌓는다. 문명과 자극은 많아졌지만 감정의 폭이 좁아진 요즘 아이들은 더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시대에 맞는 게임을 하지 못하면 또래집단에서 이탈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아이는 부모에게는 한없이 착한 아이로 남을 수 있겠지만 그 욕구가 강한 집단의 세계에서는 (특히 남학생) 왕따가 될 가능성 역시 한없이 올라간다.
부모들은 이 변화를 수긍하고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이 왜 게임이 몰입하고 전전긍긍하는지 그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 먼저이다. 아직도 게임이 단순히 오락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사례들은 일부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는 그럴 수도 있다.
내 기억에 어린 시절 인기가 좋은 친구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운동을 잘하고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운동과 스포츠는 학원 스케줄과 코로나로 그 설 자리를 많이 잃어버렸고, 싸움은 단순히 애들 장난으로 취급되는 과거와는 달리 학폭범이라는 주홍글씨가 붙어버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엇으로 서열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가? 이것이 게임이 아이들의 세계에서 권력을 가지게 된 이유이다.
나는 위에서 서술한 이유로 아이들의 세계에서 게임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게임을 하는 방식과 절차를 자연스럽게 알려줄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아닌, 피할 수 없으면 가르쳐라였다. 다행인 것은 내가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은 있었고, 그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가족들을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내 아이가 게임으로 권력을 가지느냐 마느냐는 관심대상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혼란의 세계에서 방황하지 않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