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가르쳐라
우리 아이가 제일 처음에 했던 게임은 앞서 말했듯이 캔디 크러쉬 사가였다. 혹시 모르는 분이 있으셔서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같은 색깔 보석 3개를 맞추면 없어지는 단순한 퍼즐게임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서 한건 아니고, 내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심심풀이로 하던 스마트폰 게임이었는데, 그걸 본 아이가 몇 번 보석 색깔을 맞춰보더니 흥미가 간 모양이었다. 그 당시 나이가 6-7살쯤이었는데 딱히 정서상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아서 나중에 본인 스마트폰으로 이식하여 하게 해 주었다.
아이는 이 게임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했었다. 몇 달 안되어 500-600 스테이지까지 갔으니 계속하고 싶어 했고, 그 스테이지를 깨는 것에 성취감도 느꼈을 터였다. 하지만 캔디 크러쉬 사가는 보통의 시간 투입과 정성으로는 스테이지의 끝까지 모두지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이고, 새로운 스테이지는 업데이트를 통해 끝도 없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때 잠깐 이 게임을 하다 말다 반복하는 타이밍이 왔고, 나는 이때 아이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맨날 내가 몇 번째 스테이지를 하고 있는 중인지 궁금해했고, 나를 따라잡고 싶어 했고, 귀찮으리 만큼 자기 상태와 현황을 자랑하는 편이었는데 그 빈도가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들. 너 캔디 크러쉬 전에는 열정적으로 하더니 왜 요즘은 그렇게 안 해?"
"그거, 너무 깨기 어렵고 요즘은 잘 못 깨겠어"
"거 봐. 500-600판 할 때는 계속하고 싶어 했는데, 몇 번 안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
게임이란 게 그래. 재밌게 하더라도 잠깐만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다른 게 더 재미있는 게 있으면 다른 걸 하다가 돌아와도, 없어지지 않아.
그러니 재미없는걸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어. 아빠가 다른 재밌는 걸 찾아줄게"
"응. 요즘은 재미없어. 다른 게 더 재밌고, 아빠 말이 맞아"
내가 알려주고 싶은 핵심은 게임도 재미없는 때가 온다는 것. 그리고 게임의 세계와 숫자는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 게임교육의 가장 핵심 포인트는 이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이 자꾸 아이 인생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할 때 그 범위를 규정짓고 자유롭게 들낙날락 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게임 교육 핵심의 하나이다.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게임의 세계관을 부모와 차단시키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넓혀 나간다.
'엄마 아빠는 어차피 이 세계를 이해해주지 않아'
그 작은 무관심에서 아이의 세계관 고립은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게임 속 숫자에 집착한다. 넓어져 버린 게임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침범하게 되면, 같은 숫자와 성취의 중요성에서 현실세계가 게임 세계에 패배해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게임 세계에서 레벨 21이 22 레벨이 되는 게, 현실에서 반 석차가 오르고, 능력을 개발하고, 스포츠에 도전하고 이런 것보다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같은 노력이다. 하지만 훨씬 작은 노력으로 훨씬 큰 보상을 받는다.
게임은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라는 것. 그 놀이터를 입장하고 퇴장하는 연습을 어릴 때부터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출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연습은 아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완성되니,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과 퇴장을 반복해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