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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May 16. 2023

두 달 차 워홀 후기

혼란하다 혼란해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한 달넘고 두 달은 좀 안 되는 시간이지만 현재 근황은 현타 극복 중이다.

  내가 아무리 해외생활 경험자라고 해도 현타가 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나 보다.

  처음엔 내가 구한 집이 외곽이라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가 했다. 사실 아주 아닌 얘기도 아닌 게 내가 사는 동네는 미드에 나올법한 전원주택단지이고 장을 보려면 도보로 15~20분 정도는 나가야 한다. 편의점은커녕 주변엔 전원주택밖에 없고 어학교도 알바도 다니지 않다 보니 집에 고립되다시피 했었다. 그래서 일은 천천히 구해야지 했던 당초 계획을 틀어 일을 빨리 구하고 영어 수업도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영어과외를 시작했고 곧이어 일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현타는 여전했다. 거기에 출근 스트레스까지... 많은 워홀러가 그렇듯 난 서비스업에 뛰어들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서빙일은 바쁘고 힘들었다. 서빙이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고 있어서 다시는 요식업 쪽 일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식사 제공에 팁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에 무릎 꿇고 말았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단점으로 '출근하기 싫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사실 이건 요식업이든 어디든 마찬가지였겠지만 내 경우엔 요식업에서 일할 때 조금 더 병세가 해지는 것 같다.

  결국 일을 하던 안 하던 현타는 계속되고 있다. 초반엔 고립된 생활에서 온 외로움이 컸고 요즘은 '출근하기 싫어 병'이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혼자서도 잘 논다고 생각했던 나는 거의 고립에 가까운 생활 해 보고 나서야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가족, 혹은 친구들이 있다는 전제 하에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룸메이트나 같은 셰어하우스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었고 어학교도 다녔었기에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았어서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캐나다에 비해 훨씬 가까운 만큼 잠깐 한국에 다녀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일본에서 일본어 초보이던 시절 혼자 외국인인 곳에서 일을 한 덕분에 일본어가 빨리 늘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 그만큼 힘들었기에 이번엔 한국 음식점을 선택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처음부터 어학교를 다녔었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것에 반해 캐나다는 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아니다 싶으면 한국 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기에 더 빨리 현타가 왔나 싶다. 거기다 '출근하기 싫어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불치병일지도

  아무튼 거의 10년 전에도 분명 이런 기분을 느꼈을 거고 솔직히 그때가 더 힘들었을 텐데 망각의 동물 인간답게 그새 그 고생을 잊고 또 이러고 있다는 게 웃픈 요즘이다. 심지어 일본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힘들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지 하고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일은 현재 기준으로 멀리 있기에 미화되어 과거의 일이 희극처럼 보이는 걸 지도 모르겠다.

  힘든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한국행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아직은 더 있어보려 한다. 이 또한 지나면 추억일 것이고 한국에 간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더 해봐도 일이 힘들면 돈을 좀 덜 받더라도 음식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시 고민해 봐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 있으면 어느 정도 편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출근하기 싫어'라는 마음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간다고 해서 '출근 좋아'가 될 리가 없기에 조기 귀국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걸 잘 알고 있다. 한국이든 캐나다든 일본이든 먹고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이니 모처럼의 해외 생활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 내 기준에서 알찬 워홀 생활을 보내기 위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너무 일에만 치이지 않도록 최대한 워라밸을 챙기려 노력하기로 하며 워홀 두 달 차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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