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세요.
돌이켜보면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때 그랬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난 덜 망했을까.
떠나가는 연인을, 날려버린 면접 기회를, 놓쳐버린 버스를 두고, 괜히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늦었다고 생각했을 땐 정말 늦었다. 그렇게 작고 커다란 가정법을 매일 밤마다 곱씹으면서, 조금은 우울하게 잠드는 우리들에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찾아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한 순간의 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와 제각기 달라지는 멀티버스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의 삶은 그야말로 빡빡하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세탁소로 하루하루 밥 벌어먹는데, 갑자기 날아온 세금 폭탄에, 남편은 이혼하자며 서류를 내밀고, 딸은 잘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갈수록 삐딱해진다.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일상에 지쳐가던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슈퍼히어로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 들이닥친다.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위기에 처한 세상과 가족을 구하는 것이 미션. 조그만 결정이 모든 걸 뒤흔든다는 영화 속 ‘다중우주’의 설정만큼, 영화의 장르도 대혼돈이다. SF, 코믹, 액션, 호러, 로맨스, 20여년 전의 양자경 유니버스를 볼 수 있는 <와호장룡>의 홍콩 무협까지, 단단히 섞였다.
<미나리>, <문라이트>, <미드소마> 등 독립 영화로 유명한 A24가 배급한 영화로, 마블 어벤져스의 루소 형제가 제작에 함께했고, 뮤직비디오 PD 출신의 데이비드 형제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는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성과, 눈을 현혹시키는 화려한 연출, 그리고 선을 넘는 엽기적인 B급 상상력이 돋보인다. 감히 다음 씬을 예측하기 어려운 스토리 전개에, 각종 대중문화의 오마주, 손 럭스의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더해져, 막이 다다를수록 정신이 점점 혼미해진다. 그런데 뭐 이런 난장판 같은 영화가 다 있나 싶을 때,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나도 울고 있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폭주하는 분노 혹은 냉담한 포기와는 다르다. 돌이켜보면 손에 꼽는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한판(?)을 뜨고나서야, 언젠가 ‘사랑’의 동의어는 ‘참는 것’이라고, 나름의 결론에 다다랐었다. “진짜 못 참겠다, 그만하자”며 차갑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말보다는, 으르렁거리면서 불같이 싸우고, 마음에 대못을 박아도 “너 나 안 볼 거야?”라며 꽥 소리지르는 말이, 내가 지금껏 쌓아온 데이터상 “사랑한다”는 말에 조금 더 가깝다. 원래 더 사랑하는 쪽이 참는 거다. 영화의 메인 사운드트랙 <This is a life>에서도 비슷한 가사가 나온다. 우린 서로 곁에 있기로 선택했다고(I choose you and you choose me).
우린 구질구질해도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서로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허무와 비관에 맞서 마침내 온전히 우리를 견뎌낼 수 있다면, 여기에 약간의 여유만 더해진다면. 각자의 삶, 각자의 무게를 진,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조금은 더 다정할 수 있을 거다. 게임처럼 리셋 버튼을 누르고 깔끔하게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여기가 아닌 모든 곳에 있어 보여도, 여기, 지금 이 순간을 당신과 함께 누리기 충분한 이유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개봉 | 2022년 10월 12일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 커티스
등급 | 15세 관람가
배급 | A24, 워터홀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