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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03. 2022

‘핼러윈’이 문제라는 어른들께

단 하루의 ‘해방’을 즐기려던 청년들에겐 죄가 없습니다

“얼른 취업해야지...결혼은 언제 할래?” “옷이 그게 뭐니? 어른들 오시는데 점잖게 입어야지.” 명절 때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엄격합니다. 명절은 그 기준이 극대화 되는 날입니다. 집안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식들과 손주들을 앉혀두고 잔소리를 서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름 난 ‘인서울’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를 기대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청년들은 작아집니다. 어른들 앞에서 조신하게 앉아 ‘찍 소리’도 못하고 예의범절을 지켜야 하는 명절이 청년들에게 달가울 리 없습니다. 청년들에게 설날과 추석 같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명절은 ‘억압’의 상징에 가깝습니다.


반면 핼러윈은 ‘해방’의 날처럼 느껴집니다.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핼러윈을 즐깁니다. 그 속에선 청년들이 개성을 마음껏 뽐내도 ‘문제아’ 취급당할 일이 없습니다.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억눌러왔던 욕구를 방출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날이나 다름없죠. 평소 조용하고 성실했던 사람들도 이 날 만큼은 남몰래 동경했던 캐릭터 분장을 하고, 자유롭게 정체성을 표출합니다. 일부는 ‘핼러윈이 우리나라에 와서 변질됐다’고 주장하지만, 캐나다 유학 시절에 경험한 서양의 핼러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외국에선 각 세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핼러윈을 즐깁니다. 아이들은 이웃집에 사탕을 받으러 다니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과자를 준비해놓습니다. 20~30대 청년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코스튬을 하고 ‘핫 한’ 거리에 나가 춤을 추고 즐깁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모든 세대가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명절이 있을까요. 제 기억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핼러윈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태원에서 참사를 당한 청년들도 마찬가지였겠죠. 수험생활을 마치고 대학생이 됐지만 코로나 탓에 마음 놓고 즐길 곳 없었던 대학생도, 직장에서 일주일 내내 시달린 사회초년생도 3년 만에 단 하루 주어진 ‘해방의 날’을 마음껏 즐기려고 거리에 나왔을 겁니다. 그 청년들이 예상치 못한 참변을 당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전하는 외신 기사에는 “가장 즐거워야 할 축제 날 너무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며 희생자를 애도하는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사에는 엉뚱한 댓글들이 달리더군요. “놀러 나갔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니 자신들 책임이다” “서양의 귀신 놀이를 들여와 변질시키면서 노니까 그런 것”이라는 혹독한 2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한 두 개의 댓글이 아니었습니다. 이 댓글은 수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상단에 노출됐습니다. 벌써 두 번이나 또래의 죽음을 지켜본 세대로서, 마음이 난도질 당하는 듯했습니다. 이걸 본 유가족이나 생존자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이번 참사의 원인은 핼러윈도,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코스튬을 하고 거리에 나온 청년들도 아닙니다. 원인은 압사 사고에 대한 무지와 대책 부족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에 인파가 몰렸다면 언제 어디서든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압사 사고가 공연장, 축구장, 지하철역 등에서 일어난 적이 있더군요. 이같은 사실을 외면하고 ‘핼러윈’이나 ‘요즘 청년’을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꽂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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