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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17. 2022

우영우를 보고 그 애를 떠올렸다

'무조건적 배려'가 아니라 '이해'가 필요하다

그 애는 대화를 할 때도 늘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갸우뚱하게 기울인 고개,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 도수가 높은 안경. 3년 내내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 날, 그 애가 전교생의 반과 번호,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친구들은 그 애한테 다가가 "나는 몇 반, 몇 번이게?"하고 물었다. "O반 O번 OOO." 그 애는 정말로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는 애들의 반과 번호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신기하다.' 거기까지였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애는 ‘도움반’이었다. 도움반 친구들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지 않았다. 아침 조회를 한 후 도움반에 가서 따로 수업을 듣다가 종례 시간에만 반으로 돌아오곤 했다. 도움반 친구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무슨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도움반 친구들은 도움반 친구들끼리 놀았다. 그 애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나와 어딘가 다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를 보며 그 애가 떠올랐다. 질문하면 생각하다가 '아'하고 한 템포 늦게 반응하고, 기우뚱하게 걷거나 잘 웃지 않는 모습이 특히 비슷했다. 아, 그 애가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시각이나 청각이 예민하구나, 만지는 걸 싫어하는구나, 농담이나 거짓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구나. 처음 알게된 사실이 많았다. 우영우가 머리 속에서 '고래'에 대한 정보나 법조문을 찾는 모습을 CG로 표현한 부분을 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생각한 후 대답을 하기 때문에 뜸을 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구나.


 드라마를 그때 봤더라면 어땠을까.  애를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친구' '나와는 다른 친구'로만 바라보진 않았을  같다. 반응이 조금 느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릴  있다는  알았다면, "나는  ,  번이게?"라는 물음에서 그치지 않고   마디  걸어봤을거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배려'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 필요하다. 그래서 우영우는 사람들에게 "저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하고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송무팀 이준호는 "변호사님을 이해하는  도움이 돼요"라며 고마워한다.


시청자들도 우영우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정도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지만, 다행히 드라마는 3화에 우영우보다 심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과 그 가족을 등장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설명까지 놓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단순히 '도움반 친구들'로 일컫는 게 아니라,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지적장애, 다운증후군, 조현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디에서나 '우영우' 이야기를 듣는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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