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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아 Oct 12. 2022

어차피 나갈 회사인데.




회의실을 나오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누르고 눌러왔던 울분이 터져서였을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상사의 주장을 반박하다 지쳐 “네 알겠습니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나온 직후였다.


그녀는 외주 업체에 보내는 메일을 자신한테 보고하지 않고 자신을 참조했다는 이유로 나의 업무 방식을 지적했다. 나는 진행 과정 중에 참조를 걸었던 것일 뿐, 보고는 내용이 확정된 후 하려고 했다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 상황이 다른 회사였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회사는 이사가 유일한 리더인 체제로, 모든 상황을 시시콜콜 이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단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나도 7년 차인데 회사 보고 체계쯤 모르고 참조를 걸었을까. 그녀는 참조를 건 것부터 메일의 문장 하나하나를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데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내 업무도 아닌 걸 받아서 하고 있는데 이렇게 모욕적인 언행을 퍼부을 수가 있는가.


.

.


화가 났다. 속상했다. 나는 이런 취급을 처음 받아봤다.

무슨 일이냐는 회사 메신저가 여기저기와 있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일을 잘한다는 핑계로 이 부서, 저 부서 업무를 떠넘기더니, 고작 한다는 얘기가 참조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다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나갈 회사인데 더 화도 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넘쳤는데 내가 무엇이 아까워 이 회사에 내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있는단 말인가. 회사와 직원은 엄밀하게 이해관계이다. 회사도 나를 대체 가능한 직원 한 명쯤으로 생각하듯, 나에게 회사도 대체 가능한 회사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화 중 앤드류 카네기의 토끼 일화가 있다.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친척으로부터 토끼를 선물 받았는데 토끼의 번식력이 대단해서 매달 토끼의 수가 점점 늘어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혼자의 힘으로는 토끼들을 돌보기가 힘들어진 소년은 친구들을 불러서 토끼마다 그 친구의 이름을 붙여줬다. 그러자 친구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진 토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풀을 뜯어와 토끼들을 먹이고 돌보기 시작했다. 그 소년은 타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 이미 터득한 것이다. 이 소년은 나중에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가 된다.”

(멘탈을 바꿔야 인생이 바뀐다 일부 발췌)


타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 사람들은 사람을 자발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든다. 불필요한 지적으로 좀 먹게 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끔 하는 모든 회사에 그들이 기대하는 이익 이상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지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면, 회사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앞만 보고 내달리다가 애써 모은 토끼들이 다 도망치지나 않을지, 조심스레 우려를 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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