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운동화 한 켤레 마음놓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산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백화점이나 하다못해 아울렛 따위가 아니라 시장에서 운동화를 사서 신고 다니는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런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니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메이커 운동화를 신고 다녔고, 체육 시간마다 서로의 발을 힐끔거렸다. 나는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체육 시간이 미치도록 싫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브랜드는 뉴발란스였다.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체육 시간에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나도 그 운동화가 가지고 싶었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고 아빠를 졸라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만은 아빠를 졸랐다. 고가의 패딩 점퍼도 아니니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다.
며칠 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빠의 손에는 검정 비닐 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들뜬 목소리로 '네가 말한 뉴발란스 운동화 사 왔다'며 내게 그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정말로 뉴발란스 운동화가 보였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운동화를 신어보고 아빠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마침 이튿날에는 체육 시간이 있었다.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에 선 나는 어서 아이들이 내 발을 봐주기를 바랐다. 운동화가 형광색이어서 멀리서도 눈에 띌 터였다. 머지않아 운동화가 뿜어내는 존재감을 알아차린 아이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 이거 뭐야? 뉴발이야?"
나는 아이들이 몰려들어 내 운동화를 샅샅이 뜯어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반응을 기대하며 서 있던 나는 뜻밖의 말을 듣고 얼어붙었다.
"에이, 짭이네."
그 말을 신호탄으로 주위에 몰려들었던 아이들은 빠르게 흩어져버렸다. 나는 짝퉁 운동화를 신은 발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하게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형광 녹색 운동화는 다시 보니 촌스럽기 그지없었고, 아이들이 신고 다니는 '진짜' 뉴발란스 운동화와는 확연히 달랐다.
화가 났다. '진짜' 뉴발란스 운동화라면 검정 비닐이 아니라 뉴발란스 로고가 인쇄된 그럴싸한 종이 봉투에 담겨 왔을 거라는 걸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메이커 제품을 사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짝퉁 운동화를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두고 다시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래 신은 운동화는 여기저기 해어졌지만, 차라리 그게 편했다. 메이커 운동화를 흉내내 만든 짝퉁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건 중학생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었다. 기껏 사다준 운동화를 신지 않는 걸 본 아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번에 사준 운동화는 왜 안 신고 다니니?"
나는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그거 뉴발란스 운동화 아니잖아. 짝퉁이잖아. 짭이라고 애들 앞에서 망신당했어. 가짜를 사오면 속을 줄 알았어? 차라리 사오질 말지. 내가 서러움을 쏟아내는 동안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고, 나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스무 살이 되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형편에 맞는 대학에 입학했다. 아빠는 대학 가서 '얕보이면 안 된다며'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어주고 옷도 몇 벌이나 사줬다.
기실 대학생쯤 되면 사람들은 남의 행색을 보고 그를 대놓고 비웃거나 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라한 행색 때문에 늘 타인 앞에서 위축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비에 쓰지 않아도 될 여윳돈이 생기면 반드시 옷을 산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를 얕잡아보지 않는다 해도 늘 누군가 자기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용실과 옷가게를 거쳐 우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ABC마트였다. 그때 그런 곳을 처음 가봤다. 십만 원짜리 가격표를 달고 있는 운동화들 앞에서 나는 주눅들었다. 아빠는 뉴발란스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이거 신어봐."
나는 어색해하며 운동화 속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신던 신발들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고동색 뉴발란스 운동화를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가 여태 신던 것들은 운동화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갖게 된 브랜드 운동화는 비 오는 날 물이 새지도 않았고,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진짜'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대학 생활을 즐겼다.
그 후로 아빠에게는 이상한 주사가 생겼다. 아빠는 술에 취할 때마다 내게 운동화를 사줬다. 전부 브랜드 운동화였다. 이미 독립한 지 오래인 지금도 아빠는 나를 보면 운동화를 사주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것이 아빠 나름의 사과임을 안다. 하나뿐인 딸에게 싸구려 신발을 신기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어릴 때는 내 상처만이 중요해서 아빠의 마음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시장에 가서 짝퉁 뉴발란스 운동화를 고를 때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은 약간이나마 이해한다.
그래서 서른의 나이로 부모님이 사주는 운동화를 받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빠가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하면 선선히 따라 나선다. 이건 내가 아빠에게 하는 사과다. 그때 그렇게 화내서 미안했다는, 이제는 아빠 마음을 이해한다는 내 나름의 사과.
솔직하지 못한 우리 부녀는 운동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