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
그럼 앞으로는 당신이 죽 사 와요!
아픈 남편에게 화를 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아픈 사람은 잘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남편의 고마워하지 않는 태도에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참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도 화가 났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십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거 하나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바로 아이들 눈앞에서 남편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감정이 상한 일이 있으며 아이들이 잔 다음에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원칙도 깨뜨리고 화를 터뜨렸다. 당연히 남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화는 다른 화를 불러오니까. 전염성이 빨라서 상대방에게 가면 처음보다 더 커진다.
이미 상한 감정에는 멈춤이란 없다.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말로 다 쏟아내야 겨우 끝난다. 서로 화가 전달되면 결국에는 격렬하게 폭발. 잘못된 화는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참기만 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먼저 내 속은 썩어 들어간다. 참다 참다가 이상한 데서 터진다. 그래서 화가 난 대상에게 제대로 말하는 게 낫다.
그런데 자라면서 제대로 화를 내보지 못했다.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친정엄마는 내 화를 받아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짜증 내면 오히려 엄마는 더 불같이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서 꾹꾹 참는 것만 하며 컸다.
화가 났을 때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연습하지 못하니 어떤 일이 생기면 그냥 내가 참는다. 갈등을 만들지 않는 쪽으로 회피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면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평화만 유지한다.
그러나 속에는 계속 쌓여갈 따름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화는 누른다고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이성으로 막는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격해진 감정은 그 안에 꼬인 마음부터 알아주고 풀어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무조건 회피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갈등 상황에 있는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감정이 자신을 알아준 것을 알고 불이 꺼진다.
이번에 남편에게 화가 난 것은 남편이 나에게 보낸 카톡 한 줄과 태도 때문이었다.
‘다음부터 목이 아플 때는 건더기가 적은 죽을 부탁 해요.’
나는 죽집에 가서 최대한 건더기가 적은 죽을 사 온 거였다. 두 아이를 데리고 뜨거운 날에 그보다 더 뜨거운 죽을 들고 걸어오면서 힘들었다. 남편은 내 애씀을 알아주는 말이 없었다. 고마움도 표현하지 않았다.
가만히 보면 아주 심플한 문장이다. 간단하게 보낸 톡이 나를 건드린다. 부탁으로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더 잘하라는 의미로만 보인다.
‘그럼 네가 하든가. 니 몸에 맞는 죽을 네가 가서 사면 되잖아. 나한테 부탁하지 말고.’
애쓴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말과 태도에 화가 났다. 그동안 서운했던 게 폭발했다. 내가 참으면 집안의 평화가 유지되는데. 나는 감정을 누르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것을 선택했다. 거기에는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행동을 전달하는 걸로 말이다.
다음 날에도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격한 대화를 나누었다. 회피가 아니라 전면 대응이다. 싸움 없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서로 갈등을 풀어가는 대화를 아이들이 배운 것이다.
아이들이 싸우지 않는 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싸우고 비난하는 것만 보는 것이나 본질은 마찬가지다. 갈등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을 경험하는 기회가 없다. 그러면 아이들은 배울 수 없다.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 그것을 대화로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사실 나는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야 사랑받으니까. 남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 화난 감정은 무조건 참고 억눌렀다. 그래야 평화가 유지되니까. 회피하려 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결국 나 자신에게는 못된 사람으로 산 거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나에게 드는 모든 감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화가 났다는 것은 어딘가에 불만이 쌓였다는 의미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알아달라는 외침이다. 그렇기에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부터 알아준다. 그런 다음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래야 서로가 경계선을 지키며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해줄 수 있다.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 남편이 나에게 해줘야 행동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말로 잘 안 되면 글이라도 써서 읽는 게 낫다. 뭐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인정받지 못했을 때 화가 난다는 걸 표현한다. 그게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이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애들은 엄마가 언제 화가 나는지 정확한 경계선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건 앞으로 조심해야 하는 거구나. 엄마에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구나를 배운다.
1. 먼저 화가 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준다.
2. 어디에 불만이 생겼는지, 무엇으로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는지를 파악한다.
3. 아무 말 대잔치로 생각나는 대로 내 마음과 감정을 글에 써본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좋은 방법이다.
4. 상대방에게 내가 무엇으로 화가 났는지를 말한다. 어려우면 글로 써서 읽거나 전달한다.
5. 앞으로 어떻게 해주는 게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를 알려준다.
“혼이여, 너는 자신을 학대하고 있구나. 그러면 너는 자신을 존중할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이다.”
<명상록>에 나오는 글이다. 내가 화가 났다면 감정부터 알아주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태도다.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무엇 때문인지 가만히 들어준다. 거기에 상대방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정확하게 전달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어떻게 해줬을 때 내가 편안하고 사랑받는다고 느낀다고 전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내 마음을 글을 써보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야 건강하게 내 감정을 존중하고 표현하며 살 수 있다. 비로소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