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만든 생각에서 벗어나는 3가지 방법
또 시작이다. 내가 나를 차갑게 비난하고 비판하는 거. 내 안에 비평가의 말이 생각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정도가 더 심한 날이 있고 덜한 날이 있을 뿐이다. 매번 주제는 바뀌지만, 중심 내용은 한결같다.
너 왜 이렇게 못하니? 이것보다 더 잘하란 말이야.
스스로 잘하고 있지 못하다며 계속 떠든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지금까지 한 애씀과 노력을 하찮게 만든다.
어떤 날은 육아나 살림, 어떤 때는 직장. 어느 날은 내가 쓴 책. 이번 주제는 SNS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잘 못 하고 있다며 내 안에 있는 비평가가 열일하고 있다. 오늘따라 더 심하게 비난한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내면의 비평가는 현재 무엇을 못 하고 있는지, 부족한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입을 열기 시작하면 짧게 끝나지 않는다. 말하고 또 말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낫다. 안 보면 되니까. 아니면 입을 막아 버리거나.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생각은 그럴 수 없다. 자꾸만 떠들어댄다.
‘이건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나를 위한 조언이라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의 잔소리와 같다. 1절에서 절대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 노래.
이 말의 특성은 들으면 들을수록 힘이 빠진다.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자꾸 우울하다. 감정의 파도가 몰아쳐서 격하게 춤춘다. 한번 마음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 버겁고 힘겹다.
갑자기 인스타그램이 꼴도 보기 싫다. 이걸 안 했으면 내 안에 비평가가 이렇게 떠드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거기에 빠지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은 점차 사라진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어.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게 뭐라고. 이거 가지고 자꾸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부정적인 생각의 씨앗은 마음에 폭탄을 터뜨려 황량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다 놔버리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주말에는 모든 SNS를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받는다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네 판단이다. 또한 그 판단을 당장 지워 없애는 것은 너 자신에게 달려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에 나온 글이다. 지금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돌아보면 대상만 바뀔 뿐이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자 내 안에 있는 비평가다.
자기혐오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질 때, 무엇을 해도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을 때,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중략) 그 어떤 것보다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깊은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이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니체의 말>에 있는 글귀가 나에게 길을 알려준다. 지금은 잘 먹고 쉬어야 하는 거라고. 그래, 내가 좋아하는 차와 치킨을 먹어야겠어. 그리고 평소보다 더 잠을 자자.
나를 좀 쉬게 해줘야 한다는 신호에 불이 켜졌다. 주말이었다. 낮잠을 더 자고 밤에도 평소보다 일찍 잤다. 저녁에는 주방 문을 닫고 치킨을 먹었다.
월요일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무엇으로 나를 힘들게 했는지가 정확하게 보였다. <명상록>의 글귀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찾은 것은 3가지였다.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하다 보니, 내가 나를 힘들게 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1. 너무 완벽한 목표와 기준을 잡은 거 아닌가?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바라지 말고, 조금이라도 진척이 있으면 만족하고, 그 결과를 하찮게 여기지 마라.”
2. 남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한 거 아닌가?
“수중에 없는 것 때문에 노예처럼 비굴하게 애태우는 것보다 수중에 있는 것을 자유인답게 이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3. 계속 생각으로 나를 힘들게 해도 되는가?
“내가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도 타인도 의도적으로 괴롭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높은 기준, 이미 나보다 잘하고 있는 사람들의 결과물,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것. 3가지를 발견했다. 찾았으니 이것들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방향의 키를 돌리면 된다.
거기에서 중심 키는 나에게 있다. 내가 편안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본다.
어떤 완벽하게 잘한 상태가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그러니 내가 잘했다고 여겨야 할 지점을 바꾼다. 오늘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렸으면 잘한 거다. 글을 썼으면 해낸 거다. 눈에 보이게 판단할 수 있는 행동으로 기준을 정한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건 과감하게 내려놓는다.
더 많이 자고 좋아하는 음식도 특별하게 사준다. 컨디션과 에너지를 충전하도록 나를 돌본다.
오늘 나는 모든 방해에서 벗어났다. 모든 방해를 내던져 버렸다. 왜냐하면 방해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 판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명상록>에 와닿은 말을 읽으며 다짐한다. 내면의 비평가가 하는 비난과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을 연습하겠다고 말이다. 높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며 했던 말들은 결국 내 마음에 부정적인 씨앗을 계속 뿌려댄 거였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이제는 내 마음이 편안하게, 꾸준하게 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작게라도 더 나아지는 것에 집중한다.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나를 칭찬하고 격려한다.
내 생각의 주파수는 낙담, 실망, 고통에서 자유, 사랑, 성장에 맞춘다. 목표가 달라지면 앞으로 맞출 과녁이 바뀌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