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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Nov 22. 2022

만나본 작가, 사진가 표기식

작가 인터뷰 ; 사진가 표기식 The Seasons

서촌의 골목길에 자리잡은 엔티엘(ntl) 갤러리는 패션&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므스크(musk)가 운영하는 곳이예요. 갤러리 공간이 따로 있지는 않고 매장 곳곳을 갤러리로 활용했죠. 그렇다고 작품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진 않아요. 오히려 예술이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느껴졌죠. 엔티엘(ntl) 갤러리에서 만난 사진가 표기식의 사진은 한 작품을 빼고는 모두 작은 크기의 무광 유리 액자 안에 넣어져 있어요. 전시 공간의 크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진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 어디에나 둘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해요.


표기식 작가가 담아낸 꽃과 나무, 숲과 강은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작가가 담아낸 계절의 모습들은 왠지 생경하게 다가와요. 그렇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계절의 순간들이 표기식 작가의 사진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편집/이미지 '마니'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표기식의 사계절  

사진 출처 : 라켓 촬영

엔티엘(ntl) 갤러리에 있는 작품들은 어떤 사진들인지 소개해주세요.


엔티엘 갤러리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숲 사진을 제외하고는 작년 개인전과 겹치지 않도록 지난 1년 사이 찍은 사진 중에 선택했어요. 숲 사진은 2016년 교토의 ‘아라시’ 산에서 촬영한 컷인데 이 사진을 시작으로 제가 숲과 꽃, 나무 등의 자연물에 좀 더 깊이 파고들게 되었죠. 광고 촬영차 간 곳에서 별 생각없이 뒤돌아 본 곳에 숲의 구멍 같은 곳이 있었고 그 모습이 신비로워서 서너컷을 급히 찍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확인해 보니 너무 좋았고 이런 느낌으로 국내에서도 좀 더 찾아보고 싶어 자연을 주제로 한 개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지금 갤러리에 걸어둔 컷이 ‘아티스트 프루프’ 버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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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 숲 사진을 제외하면 모두 사진의 사이즈가 작은 편이예요.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스튜디오를 이사할 때 마다 커다란 액자를 옮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큰 액자들이 마치 ‘전생의 업’처럼 느껴졌어요.(웃음) 전 집에서 사진을 볼 때 보통 아이패드로 봐요. 이번 전시 사진들도 대부분 아이패드 사이즈로 맞췄죠. 우선 엔티엘 갤러리의 전시 공간이 크지 않기도 했고, 아이패드 정도의 사이즈면 휴대도 편하고 액자를 걸지 않고도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크기죠. 작은 사이즈의 사진은 밀도가 올라간다는 장점도 있어요. 




자연으로의 몰입  

사진 출처 : 라켓 촬영

앞서 아라시 숲에서 찍은 사진 이후 자연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죠. 자연의 어떤 힘이 계속 이끄는 걸까요?

계절은 물론 시간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계속 변해요. 예전에는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무성한 것들이 모두 가라앉고 사라지면서 속살이 드러나는 것 같았죠. 나무라는 피사체도 면이 사라지며 선만 남고, 그 선도 너무 많아서 양감이 사라지죠. 겨울은 사진 찍기에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중에 재작년 한강에서 겨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어요. 나무를 뒤덮고 자라는 덩쿨이 겨울이면 모두 시들어 버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유령 같은 형태처럼 느껴졌죠. 자연은 어느 시간대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때문에 ‘오늘은 뭘 수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하고요. 대나무 숲이 유명한 아라시 산에서 찍은 사진도 ‘아라시’를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제가 촬영한 장소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아요. 늘 그곳에 있었지만 저만 발견한 모습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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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시 중인 사진 중에 찍었을 때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때가 있다면요? 
음, 고생의 난도로 따졌을 때만 보면 겨울 나무의 사진이요. 개인작업은 일종의 저와의 약속이자 루틴인데요, 펑펑 눈이 쏟아지는 날, ‘세상이 아름다워 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고생스러운 걸 알면서도 나갔어요. 행주산성 근처 방화대교 아래에서 촬영한 나무인데, 나무는 다리 때문에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나무 뒤로는 눈이 쌓인 산이 펼쳐지면서 사진에 레이어링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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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작업이라는 루틴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시간인가요?
2013년부터 2014년 8월까지 1년간 한강에 있는 수양버드나무 한 그루만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개인작업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죠. 그때는 아침 먹고 그 나무를 찍으러 가고 점심 먹고 또 가고 그런식으로 거의 매일 찍었어요. 어떤 사정으로 못가기라도 하면 마음이 불안해졌죠. 가을에는 나무의 잎이 점점 떨어져나가는 과정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버드나무의 잎이 생각보다 오래 붙어있더라고요. 그런데 비가 오더니 다 떨어져버렸죠. 매일 촬영했는데도 잎이 떨어지는 순간은 놓쳤어요. 변화의 틈을 최대한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개인작업이 제 일상의 루틴이 된 거죠. 한강만 하더라도 오늘과 내일의 날씨가 다르고 물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모습이 달라요. 바람이 물에 닿느냐 아니냐의 변수도 있고요. 그 변수를 최대한 많이 담고 싶어요. 




사진을 찍는 순간  

사진 출처 : 라켓 촬영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건, 그 일에 대한 마음이 한결 같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사진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 찍을 때 만큼은 아무 생각하지 않아요. 한 컷을 찍을 때 숨을 한 번 고르고 엄청 집중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 좋죠. ‘오늘은 뭘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고. 어제는 양평에 다녀왔어요. 가는 길에 처음 가본 편의점에 들렀는데 편의첨 유리문에 윤슬이 반사되는 게 비췄어요.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뒤로는 산이 있고 가을 단풍이 걸쳐진 곳으로 반짝이는 강물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 순간을 촬영하는데 멀리서 제트스키의 모터소리가 들렸죠. 제트스키가 강물을 지나고 나면 파동이 커져서 반짝임이 더 많아졌어요. 그 모습이 기대되서 어서 사진을 확인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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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싶은 순간을 특정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순간.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저예요. 저는 여행을 엄청 많이 다니지도 않고 한강말고는 자주 가는 곳도 없죠. 바다가 보고 싶다고 갑자기 바다에 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예요. 아라시 산도 출장갔다가 발견한 거지, 그 숲을 찍기 위해 제가 간 건 아니었죠. 그런 제 성격을 제가 잘 알기 때문에 돌아서면 눈에 밟히는 이미지들은 빠짐없이 찍으려고 해요. 만져서 상황이나 형태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 보다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게 좋아요. 저만 부지런하면 되는거죠.



⚫ 장소 : 엔티엘(NTL) 갤러리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2길 30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일요일 휴관)
⚫ 기간 : ~ 2022.11.19
⚪ 문의 : 인스타그램 @ntlgallery_seoul




만드는 사람들 - 라켓팀
마니(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라켓 소개 - https://www.lar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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