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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창 Nov 13. 2023

느티나무 잘려나간 이야기

학교 바로 앞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학교였던 땅 일부가 도로가 되어 버렸다. 방학하기 전부터 건설사 사람들이 찾아와 측량도 하고 행정실 분들과 왈가왈부하고 있길래 곧 무슨 일이 있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서 있던 느티나무가 잘려나가 버렸다.


사실 땅이 잘려나간다는 말은 풍문으로라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들 나무 한 그루 없어지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다 생각했는지 그 누구도 나무 잘려나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물론 미리 알았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마는(그것도 공익을 위해서라는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나무가 잘려나고 나니 잘려나간 그 자리가 그렇게 휑해보일 수가 없다.  


사실 좋은 쪽으로만 본다면야 좋은 일뿐이다. 잘려나가는 구간 중에 학교 부지였던 곳이라 해봐야 경사구간으로 되어 있는 맹지나 다를 바가 없는 공간이었다. 측량을 해보니 사유지가 학교부지에 편입되어 있는 구간이 적지 않아서, 장차 혹시라도 일어날 지 모를 분쟁 요인이 해결되었다는 것도 학교로선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이번 공사로 인해 우리학교 학생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는 등하교 보도가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학교는 학교 밀집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이 보도의 수혜자는 우리학교 학생들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지어 등학교 시간마다 골머리를 앓게 했던 출퇴근 시간의 교통 문제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은 등하교 시간마다 골목에 들어선 학부모님들의 차량과 주민 차량, 선생님들의 차량이 뒤엉켜 5분이나 10분씩 꼼짝도 못하고 서 있기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건설사에서는 이번 기회에 아파트 진입로를 만들며 회차로까지 만들겠다고 하니 더이상 차량 정체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교통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던 생활안전부 선생님들의 수고로움도 고맙게도 이젠 안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잘려나간 것은 별 일 아닌 것이 아니다. 이 나무는 관리실 아저씨가 수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우리 학교의 지킴이 같은 나무였었다. 교문 초입서부터 관리실 옆에 우뚝허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마을 어귀에서 마을을 수호하고 있는 장승이나 솟대 같았다. 만약 우리 학교 출신 중에 큰 인물이 나왔었다면 그 사람이 등하교 하는 것을 지켜본 나무라 하여 그 이름을 본따 ㅇㅇㅇ나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법한 나무였었다.(대구 종로 초등학교에 최제우 나무가 있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학생부를 할 적에 교문을 설 때에 한여름의 뙤약볕을 피하려 그늘 밑을 찾곤 했던 나무였었다.(그 시절엔 나무 밑에서 벌도 많이 세웠다.) 유난히 시원한 나무 그늘에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져서 이렇게 생긴 나무가 느티나무라는 것도 이 나무 때문에 처음 알았다. 나는 이 나무 그늘 밑에서 한숨 돌리며 <아낌 없이 주는 나무>에 나오는 나무가 느티나무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었다.


천막이나 시멘트로 만들어진 인공 그늘보다 나무로 된 자연 그늘이 더 시원하다는 것도 이 나무 때문에 알았다. 과학적인 원리 같은 것은 잘 모르지겠만 교문을 자주 서다 보니 나무 그늘이 더 시원하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천연 우산 역할도 기꺼이 맡아 주었다. 촘촘하게 맞닿은 느티나무 이파리들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듯 빗방울을 아래로 내려보내지 않았다. 분명 잎사귀 사이로 조금씩 하늘이 보이고 있는 데도 말이다.


느티나무 말고도 운동장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있는 히말라야 시다 나무 몇 그루도 같이 잘려나갔다. 몇 해 전에 무리하게 가지치기하지만 않았어도 동대구로에 늘어선 나무만큼 웅장했을 나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나무 잘려나간 자리에 나무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꽤나 넓었다. 나무가 있을 때만해도 분명 차량 교행이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는데 나무가 없어지고 나니 교행에 무리가 없을 만큼 넓은 길이 되었다.


  학교 담장의 넝쿨장미도 옹벽과 함께 사라질 예정이다. 매년 5월이면 아이들의 등하교길이 초여름의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반짝거렸었는데 그마저도 이젠 끝이다.


  좋은 쪽으로 본다면야 좋은 일뿐이다. 특히 자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지만은 않은 건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다. 아니, 내가 그 나무들처럼 단지 여기 오래 있어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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