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할 때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일이 풀리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가 일그러져 마음에 멍이 들 때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곤 한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페달을 굴린다. 바람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찌든 때를 베껴내는 듯하다. 숨이 턱에 찰 때쯤이 되면 감각은 오로지 자전거 바퀴와 지면이 닿아 내는 '쉭쉭' 소리와 터질 듯 한 허벅지 통증에 집중된다. 그리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마음의 멍도 희미해진다.
집에서 오산천을 걸쳐 2 동탄으로 연결되는 자전거길로 나간다. 2 동탄 끄트머리, 더 이상 길이 연결되지 않는 마지막 천변에 풍채가 우람한 두 그루 나무가 있다. 나무의 높이는 3층 건물을 넘을 듯하다. 가지는 사방으로 가지런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는 어느 소나무 자태에 못지않다. 족히 백여 명은 쉬게 할 그늘을 만든다. 처음 나무를 만났을 때 허리둘레에는 오색의 광목이 꼬아져서 둘러져 있었다. 지성을 드리고 굿을 올리는 서낭나무였다.
어릴 적 동네 입구에 커다란 서낭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동네는 '서낭거리'라고 불리었다. 나는 그 앞을 지 날 때마다 발걸음 재촉했다. 나무 근처에 버려진 제사 음식과 그 사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쥐들 그리고 가끔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무당들의 굿 동작과 꽹과리 소리. 나는 어른들의 몽매함과 미련함을 비웃고 경멸했다. 중학생 때 새로 이사 온 교회 청년부에서 그 나무를 베어버리기 전까지 나에게 서낭거리는 떨쳐내야 할 과거의 무지함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꼭 서낭나무 아래에서 쉬곤 한다. 나무를 자세히 보면 거죽은 터지고 비틀어져 있다. 여기저기 세월의 상처가 쌓이고 또 제살로 치유하여 덮여있다. 위를 쳐다보면 늘 하늘을 향해 풍성한 잎을 피워내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쌓은 듯한 나무는 소리 없이 모든 걸 품어 준다. 지친 라이더에게 그늘을 주고 의자가 되어주고 자기 몸의 일부를 벌들에게도 내어준다. 그러나 그늘이나 앉을자리 보다 나에게 더 큰 위안을 주는 건 그 나무 존재 자체가 주는 편안함이다. 세상의 모든 해답을 갖은 듯 한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면 어린아이가 엄마품에 안겨서 느껴는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함을 느낀다. 모태 위로와 같은 나무의 넉넉함이다.
지친 속을 채우고 돌아서 바로 본 나무 아래 인적없는 늦은 밤 서낭나무 아래서 고개를 조아리고 곰 같이 둥근 어깨를 들썩이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어머님의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