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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 감로안 Jan 13. 2023

비거니즘 전성시대

비거니즘에 눈뜨다1

  비건, 비건 하는데 비건이 뭔가요?

  비건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비거니즘이라는 게 뭔지 알아야겠죠?

  식품, 의류 또는 기타 목적을 위해 동물 착취와 학대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종 차별을 넘어 동물의 삶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나 철학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완벽한 비건이 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범주 안에서 최대한 실천을 하면서 하나라도 실천하고 있으면 비건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비거니즘을 생활 방식으로 정한 이유는 나를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며 서로 해치지 않고 고통을 줄이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비건을 시작할 때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천 못하면 죄책감에 휩싸였다. 심지어 육식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가르치려 했다. 그럴수록 의견 충돌만 있을 뿐 나도 괴롭고 상대도 불편해했다.     


  비건 지향을 한 지 10년 정도가 되자 완벽한 비건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마음이 편해졌다. 내 마음이 편해지니 비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작은 노력 자체를 비난하고 폄하하려는 사람들과는 싸우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거창한 신념을 내세우는 것보다 작은 실천을 먼저 권유해 본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비건이 되어 하루 종일 채식하기, 동물권 보장을 위해 가죽제품 안 사기, 동물원에 가지 않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사용하지 않기 등이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가볍게 느긋하게 불완전한 100명의 비건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 나는 어쩌다가 비거니즘을 향해 달려가는 유별난 사람이 되었을까? 왜 불편하고 귀찮은 일을 선택해서 스스로 힘겨워하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는 함께 육식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편한 존재가 되었을까? 정확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비건 전과 후의 생활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엄청나게 술을 마신 적이 있다. 희한하게 여린 소녀에서 마치 잔다르크가 된 양 용감해지고 두려움 없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속에 잔다르크가 필요할 때면 술을 많이 마셨다. 어릴 적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외갓집에 가면 도시에서 온 골탕 먹이기에 딱 좋은 아이였다. 종종 장난기 가득한 사촌 언니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그날은 굉장히 무서운 얘기를 하던 사촌 언니가 극적인 대목에서 목이 마르니 부엌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했다. 무섭지만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면 귀신이 나올까 봐 머리가 쭈뼛쭈뼛 거리는 걸 참아가며 물을 뜨러 갔다. 시골집 여닫이 문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방문을 잡아당김과 동시에 후다닥 뛰어 들어온 나를 놀라게 하려고 언니들은 벌써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숨 죽인 채 흰 속치마를 뒤집어쓰고 떡 하니 방구석에 숨어 있는 언니들의 실체를 몰랐다. 덫에 걸린 토끼를 놓칠 세라 흰 여우 형상을 한 언니들은 방구석에서 펄쩍 뛰쳐나왔다. 놀란 토끼눈을 한 나는 한바탕 울음 끝에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이불에 오줌을 쌌다. 그리고 온 동네 놀림감이 되어 키를 뒤집어쓰고 동네방네 소금을 얻으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기억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씩 잠 못 들게 했다. 낯선 방에서 잘 때면 문득 시골 언니들의 장난이 생각나 이불 안에 손과 발을 다 집어넣고 꼼짝하지 않고 잠들 곤 했다. 행여나 귀신이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내 발과 내 손을 당길까 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낮에는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씩씩했지만, 부모님과 떨어져서 처음 혼자였던 20대 후반 2년간의 일본 생활은 밤이면 잠자는 게 두려워서 술의 힘을 빌렸다. 숙취로 힘든 다음 날 아침은 타는 갈증과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길거리 자판기에서 캔 콜라를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끼니는 맥도널드에서 당시 100엔 정도였던 저렴이 햄버거로 빠르게 때우기 일쑤였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당시, 사춘기도 아닌데 얼굴에 여드름이 심각해졌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불규칙한 일상생활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가 계속됐다. 만성 피로감에 감기에 자주 걸리고 목이 쉬는 일이 반복됐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게 되니 청운의 꿈을 안고 갔던 유학 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급기야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지친 몸으로 귀국했다. 그땐 젊다는 이유로 몸을 돌볼 생각조차 못했다.  

         

  외국생활이 지치고 외로웠는지 돌아와서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14개월 뒤 아이를 낳았다. 2년간 햄버거와 콜라,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결혼 일주일 전 극심한 피로감과 온몸 두드러기로 일생일대 가장 축하받을 결혼식을 취소할 뻔했다. 건강해야 할 딸아이는 돌 무렵부터 아토피가 심해지고 호흡기 질환인 천식을 앓기 시작했다.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생활환경과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건강 관련 강의를 일부러 찾아 듣고 요가와 단식, 명상을 접하게 됐다. 

   

  아이에게 좋은 먹거리를 고민하며 귀신을 무서워하던 초보 엄마는 어느새 채식, 동물권, 비거니즘에 눈을 뜬, 결혼 23년 차 귀신도 때려잡는 엄마가 되었다. 내가 옛날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겁 많고 요리도 제대로 못하던 좌충우돌 엄마가 채식과 요가, 단식을 하면서 오히려 더 강해졌음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를 더 강하게 만든 비건 생활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해서 만든 제품도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zero운동, 플로킹 등에도 관심이 많다. 먹거리로는 채소와 과일, 곡물, 콩요리 등을 선호하고 있다. 임신 전 엄마의 잘못된 식습관으로 아토피 피부로 고생하던 딸은 바른 먹거리를 선택한 후 점점 건강한 피부를 가지게 됐다. 어설픈 엄마로 인해 아토피와 천식으로 고생하던 딸은 엄마의 고군분투 성장을 거름 삼아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 있다. 나 또한 뿌리 깊은 나무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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