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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 감로안 Jan 27. 2023

비거니즘 전성시대

고양이 엄마가 되던 날을 기억합니다3

  ‘두부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두부는 우리와 8년째 살고 있는 반려묘 이름입니다.   

       

  어느 날, 키우던 개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울었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초등학생이었던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는 골목길을 따라 목소리 좋은 아저씨가

  “개~~ 팔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 개가 어디로 가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몰랐다. 그저 재미나서 아저씨 뒤를 쫓아다니며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날 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돌아와 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뽀삐를 생각하며 골목길을 냅다 달렸다. 그런데 한참을 찾아도 뽀삐가 안 보여 순간 혹시 좀 전에 본 개장수한테 팔려갔나 의심이 가면서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어린 마음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뽀삐에 대한 안타까움과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 개장수 아저씨를 따라 흉내 내던 한심한 나 자신을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뽀삐는 쥐약을 먹었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숨을 거뒀고 아버지도 슬퍼서 한동안 힘들어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개를 사랑하셨지만 개를 집으로 들이는 것은 끔찍이도 반대하셨다. 세상이 변해서 실내에서 개를 키우는 집이 점점 늘어났다. 그때도 아버지는 개를 공공장소에 데리고 오는 사람들에게 꼭 한마디 하시곤 했다. 요즘에 만약 그런 행동을 하셨다면 오히려 공격을 받았을 런지도 모른다. 사료를 먹으며 실내에서 지내는 지금의 반려견과 다르게 뽀삐는 마당에서 집을 지키며 자랐고, 전용 사료 대신 잔반을 주며 키웠다.


  동물과 교감한 것은 마당에서 뽀삐라 이름 지어진 몇몇 개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동물학대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어 안 가지만 대구 달성공원이라는 곳에 동물원이 있었다. 어린이날이면 철장에 갇힌 동물을 일부러 돈을 주고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후 실내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그 후론 그 어떤 뽀삐도 없었다.   

       

  평생 동물과는 인연이 맺어질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으면서 살다가 1997년 일본유학 시절 일본인들이 반려견을 애지중지하고 시간을 따로 내서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게 됐다. 또 아르바이트하며 식비를 아껴가며  대충 음식을 때우는 나와 달리 비싼 고기를 먹는 반려견이 솔직히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집안에서 함께 이불을 덮고 잠자는 것도 내 눈에는 특별한 일로만 여겨졌다. 특히, 길냥이 무법천지인 일본 생활은 무섭기까지 했다. 아르바이트로 녹초가 된 몸을 겨우 가누며 귀가하던 중 유독 밤이 되면 눈에서 광채를 내뿜는 고양이는 늘 나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지금만 같아서도 고양이 인사법을 청하며 다가가 온갖 주접을 떨며 이야기했을 텐데 정말 아쉬운 그때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해 고양이와 추억을 쌓지 못했던 점이 매우 안타깝기도 하다. 외로움에 힘겨워하던 시절이 고양이로 인해 위로받고 따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동물이 곁에 오면 뻣뻣해지던 내 몸이 점점 달라졌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딸 덕분이다. 딸은 친구들이 호기심만으로 키우다 못 키우게 된 새, 거북이, 햄스터, 장수풍뎅이, 토끼, 금붕어를 우리 집에 하나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우리 집은 동물농장이 되어갔다. 돌아가신 아빠가 아시면 아마 한소리 하셨을 일들이다. 

    

  동물과 동거를 시작한 우리 가족은 생명을 돌보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백문조를 키울 때 일이다. 알은 부화하기 적합하게 생태적으로 타원형이라서 새집에서도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알을 낳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알이 바닥에 깨져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새끼를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 여긴 백문조 부부가 알을 일부러 밀어 깨트린 것이다. 나 좋자고 관상용으로 키우는 동물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깊어졌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다가 생명이 다 된 동물들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묻어주고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철부지 아들은 동물가족 무덤을 지날 때면 그곳을 향해 두 번 절을 해서 한참을 웃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죽음의 의미를 안 아이들은 이제 동물을 키우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살아가다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고 알기 때문이다. 훗날 나의 죽음도 편하게 받아들이겠지.    

 

  죽음으로 떠나간 동물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동물농장이었던 집은 이제 더 이상 동물 없이 한동안 지내게 됐다. 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5월 초, 유기견을 보호하는 지인으로부터 군 입대를 앞둔 주인이 생후 1년 된 고양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동안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들여온 동물을 돌보는 것이 힘들었기에 이제 자유의 몸이 됐는데 또다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반대했다.


 그러나 너무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확고한 딸은 A4용지에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자신이 할 일과 고양이를 키우면서 가족이 가지게 될 장점 등을 적어서 보여줬다. 내용이 타당했으므로 가족 투표 하에 조금씩 양보하며 고양이 입양을 결정하게 됐다.  

    

  그렇게 눈부시게 하얀 고양이가 우리 곁으로 오게 됐다. 음식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는 말에 ‘두부’로 지어주고 8년째 동고동락 중이다. 주인을 집사라고 할 정도로 시크한 고양이는 개와는 다른 성격이라 주인이 오면 펄쩍펄쩍 뛰면서 반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이름을 부르면 반응을 한다. 특히 우리 가족과 각별한 사이로 연결된 사람들 중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경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겁이 많고 소심해서 낯선 인기척을 느끼면 숨어서 나오지를 않는다.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성격 때문에 말을 안 하면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억지로 불러내서 만지려는 분들에게는 두부의 성향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이들 키울 때도 유난히 낯가림을 하는 아이가 있듯이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는 억지로 인사시키지 않고 기다려주고 관심을 안 가지는 척 배려하면 아이가 서서히 다가오듯이 두부도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는다.          

 소심함을 넘어 부끄럼쟁이인 ‘두부’도 주말부부로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남편에게는 반가움의 표시로 다리를 한번 휘감는 인사를 꼭 했다. 남편과의 조우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나와는 다른 행동이다. 나이가 드니 남편에게 나 대신 관심을 가져주는 두부가 고맙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갈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쓰다듬고 얼굴 부위만 만지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을 터득하고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 지금은 독립해서 고양이 털에 자유롭지만 잠시 집에 다녀갈 때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두부를 대한다. 이렇게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아이와 함께 배우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두부’ 덕분이다.  


  아이들로 인해 동물에 대한 무서움을 극복한 후 나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동물도 기쁨과 고통을 느끼고 즐거움, 괴로움, 슬픔을 아는 존재이니까 이들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얼마 전 철학자 피터 싱어의 책 ‘동물해방’을 읽고 종 차별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비거니즘을 삶의 방향으로 삼고 실천하면서 이와 관련된 책,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동물권도 알게 됐다.   

    

  인지학자인 스티븐 핑거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소수, 인종, 여성, 아동, 동성애자, 동물을 위한 진보는  함께 진행되었다. 우리는 감각 있는 다른 존재들의 처지에 스스로를 대입해 봄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고려하게 된다”

라는 내용을 보면서 동물권은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먹거리로 시작된 궁금증에서 동물권을 이야기하고 삶의 태도를 비거니즘 실천으로 바꾸며 조금씩 세상에 무해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만큼 나는 성장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관습과 통념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게 되면 힘이 든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느낀다. 그렇지만 어떤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모르던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에서 다른 존재가 피해를 보지 않았는지 살펴보게 된 것도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이다.   

   

  나만 알던 존재에서 아이라는 생명을 키우면서 다른 생명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메고 있는 가방, 내가 쓰고 있는 화장품이 동물과 관련이 있는지 동물 실험을 거쳐 생산된 것인지 고민하게 된 것도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서 내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 다양한 삶이 있음을 인정하고 개인의 의견이 존중받을 때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 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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