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존경하는 하워드 진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 한 가지 중요한 사실,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시거나 흐뭇해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사실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다름 아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관한 소식입니다. 벌써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시는 표정이 그려집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역사에 대한 의식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미국 민중사>가 한국에 2006년에 번역. 출간된 것을 기억하시겠지요. 한국 독자들에게 전한 인사말에서도 적잖은 흥분과 함께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일부가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1492년에 대서양을 건넌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으로 많은 역사책에서 치켜세워지고 그의 이름을 딴 도시와 입상立像도 많이 있습니다. 제 책을 펼쳐 든 많은 독자들은 황금에 눈먼 콜럼버스가 에스파뇰라 섬에서 발견한 인디언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삼고 수족을 절단하고 살해한 사실을 서술하는, 콜럼버스를 둘러싼 낭만적인 이야기의 뿌리를 뒤흔드는 처음 몇 쪽을 읽자마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콜럼버스의 동상이 목이 잘리고 쓰러뜨려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식만 들어도 평생을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써 '실천하는 지성'으로 불렸던 선생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운동을 펼치며 주장하신 미국의 오만함과 수많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제국주의적 정부운영, 출신과 피부와 종교를 이유로 차별과 불평등이 넘쳐나던 미국의 역사가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황금에 눈먼 실력 없는 항해사(콜럼버스)의 후예들 역시 황금에 눈이 멀어버린 채로 대륙을 병들게 하는 현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부터 시작된 이 위기의 시기에 미국의 부끄러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위대한 항해사. 개척자. 신대륙의 아버지가 아니라 엉터리 항해술로 바하마 제도에 도착해 인도라고 착각한 멍청이. 항해에 지친 그들을 도운 이라와크인들을 노예로 삼은 배은망덕 한 침략자. 오로지 황금을 만을 위해 살인을 하고 자연 규칙 안에서 품격을 지키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을 몰살한 야만인. 학살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팔아먹은 자.(*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의 담지자란 의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우상'이, 황금에 눈이 먼 것으로 치자면 서로가 치열하게 선두를 다툴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한 지금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봅니다.
이제 미국의 역사는 학살자들과 약탈자와 자본가들의 역사에서 민중들의 역사로 새롭게 쓰이는 그 시작이라 믿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원주민, 노예, 노동자, 농민, 여성의 시점에서 역사의 변화를 일관하고 끊임없이 아래로부터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신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재와 싸우며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역사는 정치권력이나 사회의 주류가 아닌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여러 번 증명하였습니다. 기득권 세력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지만요. 그 정점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력을 시민의 불복종 운동으로 탄핵한 '촛불 혁명'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그 역동성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수많은 거짓들이 모래 바람처럼 민중들의 시야를 가리고 신기루를 보이게 합니다. 정보라고 할 수 없는 -정보는 개량되거나 모여서 지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과 음모가 넘쳐납니다.
이념이랄 것도 없는 무지한 편견들이 돌아다니는 지금의 시기는 혼란하지만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역사는 생각보다 느리게 발전합니다. 몇세대가 지나서야 겨우 한 발씩 나아가니 말입니다.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이 더욱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