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좌절인내력이 꼭 필요한가요
ADHD 는 전두엽이 고장난 장애라고 말한다. 유전적인 소인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만큼 금쪽 같은 내 딸과 아들의 상태가 걱정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뭐랄까. 내가 어렸을 때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끈기가 없고 좌절 인내력이 낮다. 비단 결과를 중시하는 내 썩어 빠진 양육태도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흥미 위주의 활동만을 추구하고, 조금이라도 수행에 방해물이 생기면 하기 싫다고 뒤집어 지는 그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집인지, 병원에서 검사 중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라고 할까. 지인은 내 직업병 때문이며, 내가 너무 harsh 하게 아이를 평가한다고 지적하지만 마음 한 켠엔 그 아이의 충동적이고 부주의한 모습이 나를 닮아서 그런걸까봐, 하며 엄습해오는 불안을 외면할수가 없다. 인간이 참 어리석은게, 나의 닮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아이가 보이면, 그게 또 그렇게 수용이 안되고 어떻게든 뜯어 고치고 싶어 안달이 나는데, 전두엽이 말을 안 듣는데 내 말은 듣겠냐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희대의 명언이라 생각한다.
내일은 영어학원에서 voca king test가 있는 날이다. 20개의 단어를 미리 알려주고, 그것을 외우기만 하면 되는 건데!! 단어장 한 번 안 들여다 보는 저 아이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시공간 구성 능력이 부족하고, 그래서인지, 문자 인지와 학습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어는! 이 쉬운 걸!! 미리 알려 주는 걸!!! 하며 속이 타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은 엄마 모먼트인가. 내가 변해야 한다는 걸 안다. '못 해도 괜찮아. 근데 몇 개 틀렸어?' 라며 이중 메세지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나의 썩어 빠진 마인드를 고쳐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토끼같은 내 딸이 나의 전두엽을 가져갔을까봐, 라는 걱정에서 시작되는 끊임 없는 확인과 닥달은, 아마도, 아이를 더욱 좌절시킬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카킹 하나 틀리면 장난감 사줄게' 라는 감언이설만을 떠올리는 나의 미숙함이란.
포기해도 괜찮은 것 맞나요?
유전이 대물림이듯, 사랑도, 그 방식도,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난 죽어도 엄마처럼 안 할래, 독한 마음 먹고 아이를 바라보면 그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으려나. 그래서, 생각한다.
"포기해도 괜찮아. 끈기 좀 없고 좌절 인내력, 그 까짓거 좀 없으면 어때요. 행복하면 됐지"
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나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이처럼 가혹한 것일까 하고. 이제와서 엄마 탓을 하는 건 아니고, 괜찮다고 하는 그 말이 정말 괜찮은게 맞다는 안도감, 을 나는 아이에게 주고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 자신이 없어질 뿐이다. 물론, 사람은 적당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통해 성장하고, 그 속에서 좌절에 대한 인내와 내성, 지구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불변하는 진리에 가깝다 한다면, 아이가 어떻게든 끝을 보고 마무리를 통해 뿌듯함과 성취감, 그리고 탄력성을 기를 수 있게 훈육하는 것이 맞겠지, 라는 생각이 확고하지만, 그런 믿음의 저편 너머에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할지언정, 당장의 행복감을 누리지 못하는 저 아이의 인생이 과연 즐거운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마시멜로를 지금 먹느냐 나중에 왕창 먹느냐...정해진 답은 없다. 우리 아이가 참고 견디는 것이 극도로 고통스럽다면, 그냥 하나 먹이고, 그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 주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포기라는 단어 안에 꾸역꾸역 집어 넣고, 10개도 모으지 못하면서 나중에 100개는 어떻게 모을거냐고 닥달한다면, 나는 노답 엄마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본다. 그 중간과정이 상당히 생략되었고, 어찌 흘러갈지 모르는 인생사에 상당한 비약이 들어간 생각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를 닮아 부주의하고 주의 유지 시간이 짧고 충동적인 그녀에 대한 책임이라면, voca king이 못 될지언정, 믿어핑 열쇠고리를 만들며 집중하고 몰두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저 시간을 방해하지 않은 것, voca king 이 되지 못할까봐 좌불안석 노심초사 이건 나의 문제이고, 나의 불안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가는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밖에 없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