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본 사람이 이기기도 하더라고요?
우리아이가 자폐일까요
맘카페에 익명으로 글 하나가 올라왔다. 아이의 특징을 나열해 놓고, 어린이집에서 병원 내원을 권유 받았다, 정말 자폐 같이 보이느냐, 병원을 가야하는 건가, 등등의 질문을 남겼다. 순식간에 댓글이 어마무시하게 달린다. 글 속에 적힌 아이의 특징으로 봤을 땐, 자폐스펙트럼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아이를 보지 않은 이상 진단적인 언급은 불필요하기에,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주기 위해 댓글을 달았다.
'48개월 미만은 풀베터리검사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일반 센터보다는 병원을 우선 내원하셔서 검사를 받아 보시는 걸 권합니다. 36개월 이전이면 재활의학과를, 그 이후면 소아정신과로 가시고, 굳이 대학병원 개인병원 구분치 말고 최대한 빨리 초진 가능한 곳으로 예약을 하세요'
내 글에 댓글이 달렸는데, 본론의 본질과는 다소 다른 내용이다.
'48개월 미만도 풀베터리 가능해요. 아이가 협조가 안되서 빨리 끝나긴 할거에요'
댓글을 다시 달아주어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풀베터리검사에 대한 설명을 적어 다시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상급병원으로 분류되는(현재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님이 몸담았던)병원에서 풀베터리 검사를 받았고, 무려 48개월 미만이었고, 근데 협조가 안되어 30분만에 검사가 종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원장님은 36개월 미만이면 진료도 보러 오지 말라 하는데...
'그건 장애진단검사 아니었을까요'
다시 댓글을 달았다. 내가 왜 이 무의미한 싸움에 말려들고 있는가. 오진 현타에 잠시 멈칫했는데, 뭔가 내 전문성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져서 찌질하게 또 댓글을 달고 만 것이다.
'아뇨. 풀베터리라고 하셨어요. 풀베터리는 36개월 이후부터 가능한데, 검사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셨어요. 첫째는 ADHD 쪽으로 풀베터리, 둘째는 자폐 쪽으로 풀베터리 받았어요. 조금씩 달라요. ***카페도 36개월때 풀베터리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 많아요'
본인의 경험과 인지도 높은 타카페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의 논리에 힘을 실는다. 'ADHD쪽'으로 풀베터리, '자폐쪽'으로 풀베터리, 라는 말도 이해가 안되거니와, 36개월이면 자기 보고나 언어 구사가 미흡한 경우가 많아 풀베터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 검사 구성이 달라질 뿐 풀베터리가 맞다고 했다 하니, 뭐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있다 해도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왜 하고 있는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은데, 그건 검사를 그렇게 구성해서 진행하는 병원측의 문제도 있어 보이니,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상대는 댓글에 또 댓글을 달았고,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검사는 임상심리사에게 받는 것이라는 설교와 함께 검사 구성과 오더는 전부 의사의 고유 권한 인것처럼 글을 써 놓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오더는 의사가 내리는 거지만, 애초에 검사 구성은 임상심리사가 함께 작업하고 결정하는 영역이다. 오랜 기간 검사 구성에 포함되어 왔던 *웩슬러나 *로르샤하 같은 검사는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겠지만, 그 밖에 *자기보고검사들은 새롭게 표준화 되는 것들도 있고, 검사 특성이나 수가에 따라 의사와 검사자들이 의논하여 결정하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검사 자체를 임상심리사가 더 잘 아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반은 어설프게 알고, 반은 틀렸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더이상 말해 뭐하겠는가. 이미 확신편향에 가득차서 상대방의 의견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안물안궁 시전하는 사람과는 말을 애초에 섞어선 안될 일이었다. 소모적인 싸움에 말려들어 시간을 허비했다. 그녀가 단 마지막 댓글은
'전 애 둘 다 발달장애라 36개월때부터 매년 풀베터리검사 합니다'
였다. 애 둘다 발달장애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그래서 어쩌라고 싶어진다. 이런 댓글은 무엇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다는 것일까. 이런 소모전에서 이긴 것에 기쁨이라도 얻는 것일까. 발달장애 아이 둘을 키우니까, 당연히 다른 이들보다 많은 것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노라 외치며, 본인의 경험이 마치 사실이고 정답인 것처럼 말하면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이냔 말이다. 사실 풀베터리 검사가 가능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자 글을 올리고, 탐색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부정확한 경험적 지식을 뽐내듯 전파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은 의문도 남는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그 글의 댓글은 무려 60개가 넘게 달렸는데, 하나씩 읽어보니 몇몇 댓글은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우리 지역에는 소아 전문 없어요. 서울가세요' 는 양반이었고, '자폐는 48개월 지나야 진단 가능해요', '지역에서 유명한 소아정신과에서 자폐라 했는데(우리 병원 말하는 듯), 서울 유명한 곳 3곳 모두 아니라고 했어요' 등등..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써 놓았고, 그런 류의 글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로르샤하 검사로 치면 '개인적 반응'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고, 이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를 시사하기도 하겠다.
궁금했다. 엄연히 소아 전문인데 왜 소아전문이 없다고 하는 걸까. 왜, 전문성이 없는 이들로부터, 전문성에 대한 부인과 폄하를 감내해야 하는가. 여기서 자폐라는 소견은 오경보오류라 치면, 서울 유명 교수들이 자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누락오류에 해당할 수 있는데, 왜 지방 소아전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오진'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아이의 상태가 아닌 의사의 말이 안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한 현실. 서울 유명 병원 3곳을 예약하고, 수개월, 길게는 1년도 대기하였다가 '자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이의 상태와는 사실, 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 그들이 '오진'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을 바라볼 때, 단순히 '진단명'의 유무가 아닌 아이의 '적응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언젠가의 글에서 썼듯이, 자폐는 '스펙트럼'으로 이해가 되는 장애인만큼, 경증의 자폐인 경우 심한 ADHD로 오진되는 경우가 정말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아이가 달라서' 이 병원 저병원 내원하고도 '주의력 결핍' 정도의 소견으로 유아동기를 지나고, 결국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유명한 오** 클리닉까지 갔다가 우리 병원으로 흘러 들어온 아이도 몇 명 보았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유명세만 쫓아 아이의 상태를 평가 받고 안도하는 것만큼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다는 생각도 함께 스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우리도 엄연한 소아 전문입니다!' 라며 일일히 소명을 할 일도 아니겠거니와,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내 말을 들어줄리도 만무하다. 혼자 속으로 억울해하다 내일이면 잊혀질 안타까움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서울 안 가본 놈이 이기는 싸움. 그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치만 다녀와 본 사람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며 밀고 들어오면, 그것 만큼 무서운 논리 또한 없지 싶다. 그렇기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나의 필승 전략인데....오늘은 실패하고 말았다.
*지능검사의 이름
*투사검사의 한 종류
*환자가 직접 문항을 읽고 응답하는 형식의 검사들을 일겉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