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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니스 Dec 24. 2020

[그런 날이 있어]

[3] 엄마는 괜찮은데 내가 우는 날.

우리 병원은, 소위 '뷰맛집'이다. 지역 중심가 사거리에 위치한 건물에 자리잡고 있어서, 로타리, 지역 광장과 관공소 등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마침 그 방향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까닭에 처음 오는 환아들은 창가에 달라 붙어 눈을 뗄 틈이 없다. '우와~'하며 사진 찍는 가족들도 많다. 내 방은, 그 통유리 벽면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달려 있고, 잠시 문을 열어 놓고 업무를 볼 때면 창문에 침 바르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다.


4살 정도 되었으려나, 유독 그 창가에 매달려 창 밖 보기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있었다. 굳이 나의 방에 들어 오지 않아도, 조만간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검 짐작할 수 있었던 작은 아이. 허스키한 목소리에 차분한 엄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이런, 저런, 소통을 시도하였고, 아이는 그런 엄마와 세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보통 검사 예약을 하고 가면 최소 2주 길게는 한달이 지나야 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업무로 잊혀졌던 아이와 엄마를 얼마전 다시 내 방에서 만났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외로, 함께 들어온 엄마는 반응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덤덤했다. 아이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신 답해주며 '모를 거예요' 하고 말았다. 여차저차 끝난 아이와의 검사 후 엄마와의 면담에서,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던 아니는 현재 장애 전담 어린이집에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무려, 네 번이나, 일반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퇴소 당하고 옮기고를 반복했다고 했다. 받아줄 수 있다고 해서 보냈지만, 막상 아이는 방치되었고, 혼자 놀았고, 그러다가 다쳐서 집에 돌아오길 반복했다고 했다. 왜 처음부터 장애 전담을 보내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 많은 엄마들은, 실낱 같은 희망으로 일반 기관을 먼저 보내고, 진짜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는 것이 장애 전담 기관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몇 번의 퇴소 후 현재의 기관으로 옮겨졌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혼자 남겨져서, 자신의 손바닥만 들여다 보고 있었던 아이의 시간과 공간이 마음 아팠다. ASD의 가장 핵심적인 진단 기준은 '의미있는 상호작용의 여부'이다. 하지만, 그게 안되는 아이라고 해서, 혼자 남겨져도 된다는 법은 없다. 세상에 그 어떤 아이도 빛을 품지 않은 아이는 없다.


방을 휘젖고 다니며 온갖 물건을 만지고 부수는 환아들과 달리, 아이는 얌전했다. 의사소통의 결여는 확연했지만 어떤 부분에선 크게 다른 점이 없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도 쉽게 절망하지 않았을 거 같았다.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적응도 마쳤고, 교사들이 알뜰히 아이를 돌봐준다고 한다.


아이의 시간이, 늘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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