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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Feb 26. 2022

걸으면서 발견하는 소소한 삶의 철학

삶이 이동하는 자유와  즐거움의 재발견







          

걷는다는 것은 자유로운 공기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냥 바람 좀 쐬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아마도 먹은 식사가 포화상태라 소화를 위한 일인 줄도 모르고 아니면 답답한 공간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어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권태로울 때 생각의 변화를 위해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산책은 단조롭지만 육체의 무기력함을 재생시키는 마력이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마주하는 불빛이나 인접한 공원길을 거닐면서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풍경에서 떠오르는 미학의 쾌감을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런 목적 없이 홀로 걷는 산책은 스스로 시각 안으로 들어오는 많은 영상들로부터 도시의 느낌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준다. 산책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발견의 즐거움과 순수한 존재감을 되찾는 삶의 소박한 행복이 아닐는지.     




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자주 시청한다. 배우가 직접 걸으면서 동네의 숨겨진 재미난 정보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통해 동네를 재발견하는 도시 기행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유명 도시 하나를 선택하여 관광명소를 찾아다니는 다른 여행 프로그램과 달리 우리가 사는 주택가 골목길이나 시장 등을 주로 걸어서 다니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정감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여유만 있어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속도의 시대에 잃어버리고 살았던 동네의 아름다움과 풋풋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찾아가며 도시가 품고 있는 동네의 가치를 재발견해주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에 빠져 시간이 날 때마다 배우와 함께 길을 걷는 상상을 한다.     




우리는 자주 걷는가? 물론 살아 있다면 걷지 않을 수 없다. 어딜 가려도 걷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자동차를 타고 가도 최종적으론 걸어야 한다. 걷는다는 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공간이동만이 아니라 과거를 지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재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자가 선택한 길 위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나름 열정을 쏟으며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결국 삶의 본질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며,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매 순간 즐거움의 의미는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자신의 발자취이니까.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 있는 강변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강변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엔 최적이기 때문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공간을 응시하다 보면 원근법에 조화를 이룬 풍경에 도취되어 마음은 더 없는 감정의 자유 속으로 빠져든다. 걷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나와 행복한 동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풍경과 만나며 혼자만의 즐거운 마음으로 나와의 대화를 나누며 걸어간다.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온 걷는 일이 이젠 취미생활이 되어 주변 풍광과 제법 친숙해져 자주 만나는 친구처럼 우정마저 느껴진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는 산빛과 물빛, 꽃과 나무들의 향기가 몸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내가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풍광이 먼저 마음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것만 같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나무와 꽃들이 내게 말을 걸고 인사를 하며 한 번쯤 더 봐달라고 조르는 것만 같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 어디선가 재잘대는 새소리, 걷는 내 발자국 소리까지도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친구가 된다.     


걷는 것은 내 삶이 이동하는 소박한 즐거움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멈추어있는 나와 타협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다. 걸으면서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은 생각의 즐거움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면서 얻는 내 몸의 즐거움이 된다.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또 하나 걷기에 묘미를 더해주는 곳과 만난다. 강변에 조성된 ‘댓잎 소리길’은 마치 내가 숨어들 위안의 장소처럼 보인다. 댓잎 소리길은 갈림길이 거의 없는 외길이라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즐기며 생각 없이 걷기만 해도 즐겁다. 키 높은 대나무 숲은 한낮에도 어둠이 드리울 정도로 그늘이 짙다. 영화 ‘더킹 영원한 군주’에서 이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대나무 숲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바람이 불 때면 머리 위로 자라 있는 댓잎들이 흔들리며 내는 ‘사그락’ 소리와 숲을 이룬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연출하는 묘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본다.   

  

댓잎 소리길


잠시 댓잎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간조차 잊히는 듯하다. 겨울이 무색하게 아직도 푸른 잎을 매단 채로 흔들리면서도 고요하다. 걸으면 생각이 새로워지고 만남이 새로워진다. 바쁜  속에서 시간의 여백을 쪼개 걸으면서 살아있음을 인식하고  위에서 만나는 세상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소소한 삶의 철학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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