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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Aug 13. 2022

한국화, 화폭에 나를 담다

묵향과 색감에 젖어






     

얼마 전 지역 도서관에서 한국화 작품발표회가 있었다. 전시한 작품이 조금은 서툴고 작품성이 부족할지 몰라도 짧은 시간에 습득한 기교로 각자의 예술성 표현에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돋보이는 발표회가 아니었나 싶다. 작품을 제출한 15명의 예비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본인이 직접 작품의 설명까지 곁들인 시간을 가지면서 모두 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와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렇다, 그들이 전시해 놓은 이 작품들은 모두 한국화를 처음 만나 짧은 시간 동안 배우면서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서관의 배려로 앞으로 한 달 동안 전시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정말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 도서관에서 유명 한국 화가를 초빙하여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달성 군립도서관에서 4월부터 7월까지 총 15회에 걸쳐 진행한 한국화 강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반인들에게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한 예술의 장을 직접 체험하게 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비록 주 1회 금요일 2시간씩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집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하며 그것도 무료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일은 내게도 새로운 도전의 과제였고 또다른 가능성을 열어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물론 십여 년 전에 서예 공부를 몇 달인가 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묵향조차도 기억해 낼까 싶지 않다. 사실 동네에 있는 공립도서관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국화 무료강좌가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건 벚꽃이 만개한 올해 봄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마주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작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전통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동안 수채화나 캘리그래피 등을 조금이나마 직접 경험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한국화 수업 첫날, 우리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한국화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한국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과 형식에 따라 그린 회화를 총칭하는 말로 한국화에서 사용되는 도구는 붓과 먹이며, 농담으로 채색하는 기법이라고 했다. 또한 수묵과 여백이 강조되며, 특히 한국화가 서양화보다 은유적이고 명상적이며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라 여기는 까닭은 한국화는 얼마나 닮게 잘 그렸나를 중시하기보다는 작가의 생각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얼마나 잘 표현했나를 더 중시한다고 했다.     


실습은 샘플로 주어진 한옥과 나무를 주제로 한 간단한 그림을 보며 따라 그렸다. 한옥의 기와지붕과 나무 그리는 방법 및 채색법 등을 배우며 직접 그려보았지만 붓놀림과 먹의 질감 등을 표현하는 방법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풍경을 그릴 때의 원근법이나 색감 조절 등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다 보니 두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화선지 위에 번져가는 먹물의 향기를 코끝으로 맡으며 붓끝에서 펼쳐지는 나만의 그림 속으로 빠지며 행복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주가 지나니 붓과 먹, 종이와의 친근감이 생기면서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붓과 먹을 통해 표현되는 기와지붕과 나무, 바위와 오솔길 등을 그리고 채색하며 나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일단 부딪쳐보자. 은은한 묵향을 맡으며 자유로운 생각으로 나만의 세상을 붓질해 보자. 붓을 터치하면서 먹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신비로운 표현 방법이 너무 오묘하다. 나의 붓끝에서 풀어져 나오는 색채의 마법을 본다. 붓이 가는 길 위에서 눌렀다, 들었다, 눕혔다, 세웠다 등을 반복하면서 한국화는 먹물과 화려한 물감이 조화를 이루면서 진한 묵향이 감성을 자극하며 그 빛을 발할 것이다. 화선지의 하얀 여백 속에는 사유의 시간이 존재하고 자연의 색은 먹빛 아래 감춰지며 고요한 침묵 만이 감돌고 있다.  아직은 한국화를 그리는 작업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나에게 맞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화선지를 펼치고 짙은 묵향 속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면서 마음이 답답할 때나 마음먹은 대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붓을 잡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 시름을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간만큼은 오직 그림 속에 빠져 무상무념의 경지에 이르고 만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았다. 그리고 화선지 위에 채워지는 기와지붕, 소나무, 논두렁, 바위와 나무와 풀을 보며 잊어버린 고향의 향수를 느껴본다. 먹과 물감으로 채워 나가는 한국화 과정이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외도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 순간은 네게 또 하나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일임엔 틀림없다.


어릴 적 고향의 추억과 경험을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한 폭의 풍경화가 내 앞에 펼쳐진다. 어쩌면 한국화는 기교의 예술 인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기교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지혜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몰입감과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창작해 나가는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번 작품 발표회에 두 편의 작품을 제출했다. 님을 기다리다 지쳐 돌담 밖으로 고개 내민 주홍빛 능소화와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는 여인을 통해 베어나는 그리움을 묘사한 '능소화 연가'와 세월 잎에 변치 않는 소나무의 절개와 고귀한 기품을 그린 ‘세월의 품격'을 출품하였다. 한국화에 대한 나의 첫 시도가 성에 다 차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능소화 연가


세월의 품격


금년 여름은 너무 덥다. 특히 대구의 여름은 더욱더 그렇다. 피서를 위해 바다로 계곡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코로나가 주춤하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날에는 책상에 앉아, 한 폭의 한국화 속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피서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에 품은 노래를 화폭에 그리듯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숲 속에 서 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그림 속에 빠져 감성을 깨우고 먹물의 속성을 이해하며 붓 터치의 기교를 부리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펼쳐지는 한 폭의 한국화 속에 서있는 자신과 마주하며 뿌듯해하는 순간, 행복은 가슴속에서 은은한 솔향과 함께 또 다른 능소화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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