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천수 Nov 13. 2022

어느 슬픈 가을날의 명상

헌법 제1조를 음미함




          

깊어가는 가을의 향취가 온몸을 휘감는다. 가을은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빛깔 속에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눈앞에 나타나는 자연이 빚은 가을 속 풍광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낙엽을 밟으며 미래를 생각하기보단 가을이 펼쳐놓은 화려한 그림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정상이다. 문득 감성에 취해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떨어지는 낙엽이 아니라 가지 끝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잎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조화를 공감하기 때문 아닐까? 자연이 뿌린 형언할 수 없는 색의 마술을 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소박하기 때문이리라.      




저녁녘 창을 열고 바라보는 눈앞에 가을의 서정이 아른거려 책상에 앉아 화선지를 펼치고 붓을 든다. 붓끝에 먹물을 묻혀 화선지에 나만의 낯선 세상을 펼친다. 오래된 집과 붉은빛, 노란빛으로 물든 나무들에 물감을 흩트리며 가을의 정취를 품어낸다. 내 손에 의해 펼쳐지며 생성되는 야릇한 색감에 감탄하며 혼자만의 즐거움에 빠져본다.     


아무도 없는 벤치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그리며 차분해진 마음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움의 소리를 듣는다. 알 수 없는 정적과 평화가 잔잔히 흐르는 마음의 여유도 만끽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오직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자유다. 그림은 그냥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그림 속에 빠져드는 시간은 색채 속에 묻혀 흐르는 정겨운 그리움과 대면하는 순간이 소리 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손을 멈추고 가슴을 흔들며 다가오는 슬픔 앞에 눈을 감는다.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끽하기에는 너무 큰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던 150여 명이 생각지도 않은 참사로 우리 곁을 떠났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온 나라를 휩싸고 있으며, 더욱이 젊은 청춘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어쩌면 골목 양쪽에 일방통행이란 팻말과 안내자 몇 명만 있었더라도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우리 헌법은 국가 형태 및 국가 정체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반민주적 체제와 군주제와 독재를 부정한다. 특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문화하여, 오직 국민에게만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대통령이라도 주어진 권한 안에서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의무 없는 자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그 권한을 벗어나서 행사하면 국민은 불의한 권한을 회수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원리라는 것을 새삼 되새겨본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엔 유난히 검사나 변호사가 많이 등장한다. “진검승부”“천 원짜리 변호사”“디 엠파이어/법의 제국”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정치인과 재벌 및 검찰 권력의 끈끈한 고리를 통해 법을 무력화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를 보며 지금 우리의 현실정치와 무엇이 다른지 감히 질문해 보고 싶다. 드라마는 언제나 현 세태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와 권력이 만든 성역, 그리고 그 안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티고 있는 악의 무리 들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에 뭉쳐있는 응어리가 해소되는 기분을 공감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의와 공정이 불분명한 현실과 너무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게도 과연 정의로운 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니 법과 원칙에 의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정의로운 법을 집행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검찰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소리쳐 보고 싶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인 법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법은 강자만을 위한 것인가 하는 불신과 오해가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언제쯤 진정한 믿음이 살아날지 궁금할 뿐이다. 요즘은 정말 뉴스가 보고 싶지 않다. 날마다 싸우는 정쟁만 있을 뿐 민생을 위한 어떤 정책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국가란 무엇이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덩달아해 본다.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합의에 의해 형성된 하나의 합의체’이다. 국가의 존립 목적은 그 영토 안의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리라. 헌법 제2조 2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태원 참사에는 정부나 행정에 책임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라가 왜 이런지? 정치가 왜 이런지? 한탄할 뿐이다. 오늘따라 이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끽하기에는 너무 큰 슬픔이 존재하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닐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을 나뭇잎 하나까지 아름다운 색깔을 위해 많은 날을 햇살과 비바람에 인고하며 지낸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가을은 커피 향 속에서 단풍 냄새를 풍기지만 이해할 수 없는 참사로 희생당한 고인들을 생각하면 이 가을이 너무 슬퍼진다. 지금 답답한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 아닐 것이다. 문득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엄숙한 시간>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세상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우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믿기 힘든 참사에 희생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화, 화폭에 나를 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