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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Jan 04. 2021

첫사랑, 꾸며지지 않았기에 아름다웠다.

3. 관계의 수식

"너에게 있어서 첫사랑은 어땠어?"


 첫사랑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첫사랑? 좋았지. 애틋하고."


 애틋했고,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 누구나 처음으로 사랑을 접했다는 그 향수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가슴 뛰는 그 무언가와 단 둘이서 서로를 위해 가지는 그 육감적이고도 또 정신적인 교감은 어른이 되어 느낀 감정 중에 가장 달콤하고도 또 위태로운 것이었을 것이다. 마치 어른의 영역이라고 철저하게 저지당했던 그 '술'을 스무 살 성인이 되어 당당하게 접하고, 점차 어지러움에 침잠해 희미해지는 그 의식의 자락을 잡아 현실을 헤집을 때와 비슷하게도 말이다.


 여기서의 위태로운 사랑과 술의 차이점은 사랑은 달콤했고, 술은 썼고.


"지금의 사랑보다 첫사랑이 좋은 건 뭐야?"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었고, 지금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아버려서 재는 게 많아지고 꾸미는 것도 많아졌어."

"순수하지 않은 건가?"

"그렇다기보단 좀 더 현실적이게 변했다고 해야 하나."


 다른 관계의 색에 점점 물들어가며 우리는 처음 느낀 날 것을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특히나 지금은 그것을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때의 사랑'이라고 치부하며 어린날의 치기처럼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첫사랑의 현주소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첫사랑을 뒤로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더 다양한 사람들에 물들어갔다. 그러면서 첫사랑에서 잘못됐던 것들을 각인하고 반영하며 점점 새로운 사랑을 일궈내고, 끝내는 처음의 그 순수했던 사랑이 아닌 꾸밈이 잔뜩 들어간 전혀 다른 사랑을 하게 된다. 성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로 인해 한껏 꾸며지고 세상에 타협한 그 사랑을 하는 나이가 든 우리는 어렸을 적을 회상하며 이야기하곤 한다.


"그 사랑은 순수했고, 꾸며지지 않아 더 아름다웠다고."




 하지만 이 글은 지금의 사랑에 대한 불만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현실을 비관하며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애틋함과 날 것, 그리고 그 과거의 아름다움을 성장한 우리들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싶을 뿐이다.


 관계를 한 번 더 거칠 때마다 우리는 점점 성장해간다. 마치 글을 쓰기 위해 덤비는 초보 작가가 25개의 글을 쓰면서 과거보단 좀 더 성장한 것처럼 말이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서 8개월 동안 25개의 글을 집필했다. 그리고 처음 글과 마지막 글을 보면 그 느낌은 제법 달랐다. 좀 더 구어적으로 썼던 처음의 글과는 달리 나중의 글은 문장의 호흡도 길어지고 수식어도 많아졌다. 어휘가 다양해졌고 비유의 빈도가 잦아졌다.


 좋게 말하자면 좀 더 생각이 깊어지고 문장의 섬세한 감정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 책과 브런치의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아 좀 더 작가다워진 것이다. 그리고 숨겨진 사실로 좀 나쁜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수식어구를 제법 섞어 있어 보이고 싶은 지극히 에세이스러운 글에 대한 욕심과 '성장'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 수식이란 것은 지극히도 잘 작용하여 처음의 제법 날 것의 향기가 많이 나고 어딘가 낯설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랑도 변해갔다.


 첫사랑과 현재의 사랑은 달랐다. 처음엔 날 것으로 제대로 표현도 못하거나 생각의 중심에 '나'가 많았던 것과는 달리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였고 생각의 중심에는 '우리'가 되어 경험이 다양해졌고 교감의 빈도가 잦아졌다.


 좋게 말하자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생각이 깊어져 상대방의 감정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 사랑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목격하고 조언을 구하면서 제법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숨겨진 사실로 나쁘게 관조한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행동을 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피하며 로맨티스트이고 지극히 '연인스러움'을 의식한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수식은 감정선을 더 섬세하게 표현해냈던 것도 사실이고, 과거보다 성장한 나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갔음을 반증했다.




 우리가 아마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단순히 과거에 머물고 싶지 않고 그때보다는 나아 있기를 바라기에 그 어리숙하고 조금은 서툴었던 그때를 인정하는 것 말이다.


 평소에 내 글을 '애독'한다고 자청하고 있는 친한 친구는 예전보다 글 실력이 좋아졌다고 내게 칭찬을 건네기도 하였다. 적당히 나다우면서 거기에 내가 쓰는 수식을, 그리고 글의 구성을 찾아냈기에 과거로만 남고 싶지 않았던 내게는 지금의 결과는 썩 만족스럽다.


 그리고 사랑에서 그때의 풋풋함은 제법 잃어버렸지만 적당히 나다운 수식을 섞어 잘 해내고 있는 나를 본다면 지금의 결과는 썩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 꾸며지지 않았기에 실패했던 그 첫사랑도 꽤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꾸며지지 않은 그 날 것, 이후에는 꾸며져 저마다가 표현하는 수식이 관계에는 존재한다.


 스무 살, 어른의 영역으로 저지당했던 '술'을 처음으로 맛보고 알코올에 침잠하는 의식과 함께 느꼈던 썼던 술과 달콤했던 사랑은 이제 없다.


 대신 서른 살, 어른이 되어 익숙해진 '술'을 맛보고 알코올에 침잠하는 의식과 함께 느낄 때 술은 꽤 달콤했고 사랑도 꽤 달콤했다. 썼던 것은 숙취와 이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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