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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Jan 13. 2021

29의 비바람이 가고, 30의 봄바람이 불었다.

ep45. 적재_바람

 새로운 해를 맞이한 지 이제 2주가 지났다. 그리고 동시에 서른을 맞이한 지도 2주가 지났다. 작년에는 서른을 맞이하는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을, 그리고 올해는 서른이 되니 어떻냐는 질문을 주변 사람들이 하곤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나의 기분을 대답하자면,


"아무 생각도 없고, 서른은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나는 지극히 괜찮다. 되려 괜찮은 것 이상으로 행복하다.


 사실 작년의 말미는 꽤나 우울했다. 연말 올라가지 않는 연봉과 크게 나아지지 않는 삶임을 알면서도 그 대리 승진을 내가 누락하진 않을까 초조함을 느꼈고, 그로 인해 왜인지 모르게 승진한 당일 우울감이 치솟아 한탄의 강에 침수했다. 주변에서는 주식으로 제법 얼마나 벌었음은 어느 단체 메신저에서나 단골소재가 되었고, 나는 투자를 하지 않은 내가 바보같았던 걸까하는 생각에 작아졌다.


 결과적으로 스무살 때 꿈꿨던 서른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룩한 것이 별로 없다는 그 초라함과 나보다 더 잘난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과의 비교로 만들어 낸 그 박탈감으로 마음을 자해했다.


 그런 제법 우울했던 작년의 말미에서 지금은 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주 단순했다. 20대의 겨울이 끝이 나고 30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대의 그 후회 속에서 내가 이룩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할 시기는 지났다. 30대의 봄을 마주해야 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30대의 밭에서 이제 또 다시 싹을 틔워야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4년차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고 주변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지천에 널렸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여전히 많음을 알고 있기에 서른이라는 숫자와 함께 비로소 사실은 빠르지 않아도 되었음을 여유롭게 수용하였다.


 불모지에서는 싹이 나지 않을 것이기에 20대의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이제서야 싹을 틔울 수 있을 법한 지력(地力)을 그렇게도 만들었음을,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고 많은 것을 경험했던 20대의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보다 더 현명하게 살아갈 지력(知力)을 또 그렇게 만들었음도 받아들였다.


 서른 살은 그런 20대를 살아온 나에게 선물 같은 해가 되기를 바라며, 행복해지기로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jTppbeFFs



 대학의 입학과 인턴생활, 그리고 취업와 신입사원 생활까지 20대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왔던 나, 그리고 주말은 아직도 멀리 있고 월요일 화요일을 제법 열심히 살아와 거울을 보면 제법 피곤한 기색이 여력한 수요일을 보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는 가수 '적재'의 '바람'이다.


잠시 여기 쉬었다 가세요, 부디 편히
잔뜩 짊어진 그 무거운 고민들은
잠시 여기 내려다 놓아요, 다 괜찮으니
활짝 웃음 지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어느 날, 떠나가고 싶은 날에
문득 겁이 나는 건 당연한 거겠죠
가끔은 그냥 하고 싶은 걸 해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기억 나나요, 지난 시간들이
잊고 있었던 날들, 잊혀져갔던 모든
바람들이 어느새 하나둘씩 떠올라 그댈 반겨줄 거에요

마음은 쉽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죠
하지만 먼저 마음을 열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죠

기억 나나요, 지난 시간들이
날 있게 했던 날들, 내가 되었던 모든
조각들이 어느새 나로 다시 태어나 오늘을 반겨주네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마음이 향하는 그 곳으로

기억 나나요, 분명 날 거에요
잊고 있었던 날들, 잊혀져 갔던 모든
바람들은 어느새 언제나 마음 속에
가득히 채워져 그댈
항상 반겨줄 거에요

그대 편히, 쉬었다 가세요


 이 노래는 트래블러 아르헨티나의 OST로 출연진들의 여행지였던 '파타고니아'가 바람으로 유명한 것에서 본따 만든 노래라고 한다. 트래블러 아르헨티나를 볼 때나 이 노래가 정식 음원으로 출시되어 들었을 때, 어디론가 훌훌 떠나버리고 싶은 여행에 대한 갈망이 가장 먼저 차올랐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3월, 불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준비했던 해외여행이 뭉개지고 항공권을 환불받으면서 여행을 갈 수 없게 된 그 시점에는 분노를 삭히기 위해서 그리고 또 그 이국적인 바람을 느끼고 싶은 열망으로 지난 여행지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듣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그 여행지의 풍경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 느끼는 청량한 '바람(Wind)'보단 그의 동음이의어인 내가 원하는 그 '바람(Desire)'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이 노래는 그 동음이의어를 아주 잘 활용했던 노래일 것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거나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기에는 겁이 많아졌으며, 잘할 수 있을지 혹은 단순한 낭비는 아닐지 하는 고민들이 먼저 앞섰다. 어렸을 때에는 실패했어도 그것이 반면교사가 되어 더 나은 내일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시간이 지날수록 이제는 실패에 대해 만회할 기회와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느덧 나는 그 어렸을 적 모험에 좀 더 관대했던 소년이나 행복과 진정한 나를 찾아 퇴사했다는 그 사람들만큼이나 대담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아졌다.


 겁이 많고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진 요즘, 이 노래는 이제는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말을 건네고, 낯선 시도는 겁이 나겠지만 시도도 하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는 미래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완벽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는 쌓이고 쌓여 나를 반기고 위로할 것이라고 속삭였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도전이 무가치하지 않았음을, 그 투자가 헛되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이 노래는 바람처럼 불어와 내 바람을 자극했다. 그리고 한국말 중에는 그런 말이 있다.


"얘가 무슨 바람이 들어가지고."


 기본적인 말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다 되가는 일에 탈이 생긴다거나, 허황된 꿈을 쫓는다던가 그런 식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뭐 아무렴 어떨까. 내 바람을 이루고 싶다면 나에게 들여야지.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그냥 모든 것.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타는 쳐보지 않았지만 기타선율이 나오는 어쿠스틱한 노래를 좋아하고, 삶을 위로하는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연인과 친구들에게 내가 칵테일학원에서 배워 온 술을 제공하는 것도 좋아한다. 요리를 하지는 않지만 마트에 가서 신선한 야채 코너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도 한다. 


 그래서 다 해보려고 한다. 글을 써야 한다면 시간을 투자할 것이고, 배워야 한다면 배울 것이고, 무언가 사야한다면 살 것이고 경험해야 한다면 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원했던 바람을 하나하나 실현하다 보면, 어느 새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보다 더 따뜻하고도 상쾌한 바람이 나를 반겨줄 것임을 기대하기에. 


 서른이 되고서야 20대 처럼 더 생기있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걸 보면서 누군가는 철이 안들었다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람이 들어도 너무 들었다고, 늦바람 불어서 애가 정신을 못차린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 사람들은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를 더 먹은 사람들일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당당히 이야기할 것이다.


"아직 서른이잖아요."


 그리고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20대 후반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살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잘 하는지 모르겠어서 걱정된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극중 '진주'가 드라마 작가로서 데뷔했던 그 작품의 제목을 인용하고 싶다.


"서른되면 괜찮아져요." 



 안녕하세요, 브런치 작가 밤봇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매거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의 받았습니다.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자주 써야겠다고 다짐한 찰나에 노래라는 아주 좋은 매개로 제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고 또 살아가고 싶은 인생을 적어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덥석 잡았습니다.


 수플레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서 제 휴대폰의 플레이리스트의 곡들을 모두 다 훑어봤습니다. 반년 전에 추가해서 이제는 듣지 않은 저의 기억 속에서 낡아 퇴색된 노래부터 남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소개해주고 싶다 생각하다 잊어버린 아끼는 가수의 수록곡도, 그리고 우연찮게 길에서 듣고 노래를 검색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냈었던 그 노래마저도. 오랜만에 제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200곡을 하나하나 다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사를 하나하나 다 보았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랑노래와 이별노래에서부터, 삶에 대해 이야기해 성찰하는 노래도, 자신을 응원하는 노래도 아주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그 가사들을 보며 공감했고 과거를 곱씹었으며 오랜만에 위로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어렸을 적의 아픔이나, 겪었던 조금은 간지러운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누구나 한 번은 느꼈을 서사도 노래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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