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깊다.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것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 무엇보다 본인의 삶이 소중했다면 지금의 내 선택처럼 결혼을 하지 말고 자식을 낳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삶이 우선이고,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나눠 쓰는 것에 인색하다. 너무 늦게 시작한 공부도 재미있었고 어렸을 때 읽지 못했던 책을 맘껏 읽는 것도 좋다. 인생에서 한번도 온전히 내 것인 것이 없었고 늘 부러워하기만 해야 했던 것들이 스스로 돈을 벌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야 채워졌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완벽하게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 특정 물건이 필요해도 더 이상 부모님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엄마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워낙 작은 회사에 취업했기 때문에 또래의 친구들보다 연봉이 많이 낮았다. 하지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엄마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친구들에게 폐만 끼치지 않고 나도 그들을 위해 소소한 밥을 한끼 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하지만 나의 후한 인심도 아빠에게만은 예외였다. 이제 더 이상 아빠는 내 인생에 없었기 때문에 아빠를 위해 선물을 사거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기 위한 것 따위에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양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아빠와 나는 이제 더 이상 손이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는 엄마와 장을 보는데, 아빠 스킨이 다 떨어졌다며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셨다. 평소 같으면 함께 장을 보는 모든 비용은 내가 계산했지만, 화장품 가게에서 구매했던 스킨은 엄마가 계산하도록 두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단지 내가 왜 돈을 써야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처음 사회 생활을 할 때에는 생활비로 10만원을 드렸었다.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60만원 정도가 월급이었으니 나로서는 꽤 큰 돈이었다. 매달 생활비를 드리면 엄마는 그 돈의 반을 아빠에게 용돈으로 드렸다. 엄마 자신은 본인을 위한 용돈으로 따로 챙겨 두지 않았지만 아빠를 위해서는 항상 반을 떼어서 용돈으로 드리곤 했었다. 나는 그 상황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생활비로 드렸다. 아빠가 50살부터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집의 생활비는 모두 엄마가 벌어서 써야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생활비를 드렸지만 그것마저도 반은 아빠의 용돈으로 지출되었다. 즉, 내가 드리는 생활비는 생활비로서의 가치가 없었으며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지만 실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날 왜 생활비의 반을 아빠에게 드리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도 용돈이 필요하고, 그 돈이 자식들이 주는 돈이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라고 하셨다.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 의미 있었던 것일까?
왜 아빠는 늙고 병들고 돈이 없어서야 자식들을 찾는 것일까? 내가 필요할 때에는 본인을 위해 음주 가무를 즐기느라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이제서야 자식에게 의지하고자 한다면, 자식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마치 지난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고 성장했다는 듯이 그렇게 아빠를 대해야 하는 것일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 유별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경력이 쌓아가면서 연봉도 조금씩 높아졌고 그때마다 나는 생활비도 조금씩 더 드렸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 돈의 반을 아빠에게 드렸다. 그렇다고 아빠가 돈을 허투루 쓰신 것도 아니었다. 반주로 마실 술을 사거나, 차 기름값으로 사용하거나 밭일에 필요한 용품들을 사시곤 했다. 또 남은 돈은 틈틈이 모아 두기까지 했다.
그냥 내 마음이 너무 닫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빠의 모든 행동들이 못마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과 행동들이 어떤 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