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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그럼에도 여전히

왜 사람은 늘 후회할 행동을 하는 것일까? 분명 나는 아빠의 외로움을 이해했고 아빠가 가엽다는 생각도 했다. 이쯤되면 아빠가 나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끼쳤더라도 용서하고 화해를 했어야 했지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아빠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빠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아빠에게 조금의 마음을 열었을 뿐이었다. 이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진전이었다. 그동안 아빠와 대화하는 것조차 꺼려했던 나에게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은 확실히 큰 변화였다. 

그동안 아빠를 위해 하지 않았던 많은 행동들이 후회되었고 죄책감이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마음과 다르게 말과 행동은 여전히 퉁명스럽고 반항적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빠가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의 모습들이 더 자주 나타났다. 아빠가 엄마에게 짜증을 낼 때마다 나는 또 속으로 생각했다. ‘또 시작이다. 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한다면 그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운동삼아 엄마와 종종 걷곤 한다. 나 역시 걷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에 이른 아침 2시간의 트래킹은 엄마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했다. 집에서 40분 정도 걸으면 스타벅스가 있는데, 거기서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 돌아오는 2시간 동안 엄마와 나는 아빠의 흉을 보았다.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냐..라고 내가 먼저 시작하면 엄마는 늘 맞장구를 치셨다. 중간중간 아빠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짜증을 내는 아빠를 대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그 시간만이라도 엄마가 스트레스를 풀기를 바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빠의 흉을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나의 못된 생각과 행동들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습관처럼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아빠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나만의 확신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나는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에도 늘 당하고 사는 엄마가 더 가슴이 아프니 말이다. 4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내 삶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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