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영 Sep 14. 2022

로션, 그게 얼마나 한다고

나는 아빠에게 단 한번도 명품을 선물한 기억이 없다.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위해 머무르는 동안 엄마를 위해 다양한 영양제를 우편으로 붙였고, 돌아오기 일주일 전에는 엄마에게 줄 명품 가방을 사기도 했지만 아빠를 위한 선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살면서 비타민 하나 아빠에게 사드리지 못했다. 아니 더 솔직히 하지 않았다.

아빠의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큰고모와 고종사촌이 함께 했다. 집이 멀기 때문에 이동 시간을 고려했을 때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저녁 9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큰 고모는 바로 잠자리에 드셨고 술을 좋아하는 고종사촌은 새벽 2시까지 혼자서 술을 드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우리들은 납골당을 가기 위해 분주했다. 고종사촌은 세수를 하고 나오더니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킨과 로션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아빠 것을 사용하라고 했다. 아빠 것이기는 하지만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빠는 평소 준비성이 투철했다. 하루는 사용하던 전기장판이 고장나서 새로운 것을 사러 갔었다. 하나만 사면 되었었지만 언제 또 고장날지 모른다며 두 개를 사왔던 아빠였다. 결국 사용하던 것이 또 고장나서 여분으로 사두었던 전기장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문제가 많았다. 전기장판 특성상 부피가 있기 때문에 돌돌 말아서 보관해야 한다. 1년 이상 이런 상태로 있다 보니 사용하려던 시점에서는 전기장판이 울퉁불퉁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도 펴지지 않는 전기장판을 볼때마다 엄마는 아빠의 성격을 탓한다. 이런 아빠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 스킨과 로션이다. 아직 한달은 사용할 분량이 남아 있었음에도 아빠는 미리 사둬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미리 사둔 스킨과 로션이 새것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은 열흘 정도 더 사용할 분량이 남아있었지만 아빠가 얼마나 아껴 썼던지 두 달이 지나서야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빠가 사용하던 기존의 스킨/로션은 버렸지만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스킨/로션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엄마에게는 값비싼 화장품을 가끔 사드린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단 한번도 사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는 평생 비싼 화장품을 사용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비싼 옷을 가끔 사드렸지만 아빠한테는 사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옷장에 걸린 아빠 옷은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옷들 뿐이었다. 

동네 작은 화장품 가게에서 파는 화장품 가격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 하나 사드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아빠는 화장품 가격이 얼마나 된다고 아껴 쓰고 또 아껴 썼을까? 

우리집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다. 가난 때문에 중고등학교때 학원을 다녀보지 못했고, 가난 때문에 대학생활 동안 제대로 된 밥 한번 사먹지 못했고 친구들과 차 한잔 마셔보지 못했다. 가난에 익숙해져서 인지 엄마와 아빠의 아껴 쓰는 습관도 고착화된 듯하다. 엄마 역시 내가 사용하면 3개월을 사용할 화장품을 6~7개월을 사용하신다. 그래도 한평생 비싼 화장품 한 번 사용해보지 못한 아빠가, 자식한테 화장품 선물 한번 못 받아본 아빠가 가여웠다.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풍선처럼 커지더니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