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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엄마를 위해

솔직히 이제 조금씩 아빠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빠가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출근할 때마다 ‘아빠가 있었으면 오늘도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줬을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갑자기 먹고 싶은 빵이 있을 때에도 ‘아빠는 싫은 소리 안하고 자동차로 1시간 넘는 거리임에도 빵을 사다주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다보니 나는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아빠를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아빠를 위해 우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걱정이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거나 ‘삶이 재미없다’라고 얘기하는 엄마가 걱정이었다. 요즈음에는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냐..2~3년 정도 더 살겠지, 오래 살아 뭐해..’라는 말을 종종 하신다. 자식으로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강아지를 키워보라고 권했다. 평소에 강아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울증에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권했던 것이다. 처음에 엄마는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개털이 날리는 것도 싫고, 개도 아이와 같은데 이 나이에 힘들어서 못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엄마와 한바탕 실갱이를 벌였다. 

‘그럼 하루 종일 뭐 하고 보낼건데?, 죽을 날만 기다리다 그날이 오면 그냥 죽는거?’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그래’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내 말이 분명 엄마에게는 상처였겠지만 나도 속상해서 했던 말이다. 제발 뭐라도 좀 배우라고 권해도 싫다고 하고, 강아지라도 키우라고 해도 싫다고 하는 엄마를 볼때마다 속이 터졌다. 삶이 재미 없으면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되는데, 자식들이 힘들게 번 돈을 그런곳에 쓰고 싶지 않으시다고 했다. 실제로 엄마는 용돈으로 드리는 전액을 저축하기 위해 적금 통장을 만드셨다. 이때도 엄마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그 돈 모아서 나중에 나 좋은일 하려고?’라고 했더니 ‘내 노후 자금이야’라고 답변하셨다. 지금이 노후인데 무슨 노후 자금을 말하는걸까? 왜 자신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가둬두고만 있을까?

그러던 어느날 수영을 배워보라는 내 말에 ‘한번 해볼까?’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동네 친구분 중에 10년 이상 수영을 다니신 분이 있다. 나는 엄마에게 이분과 수영을 같이 배우라고 2달째 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매번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나의 빈자리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늘 엄마 곁에 있어서 엄마는 구지 다른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 할 일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내 나이 40이 넘었지만 엄마는 아직도 내 뒷바라지로 바쁘시다) 대화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매일 출근을 하게되면서 하루종일 남아있던 엄마는 엄마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또 중요하게 작용한 것 중의 하나가 내 거짓말이다. 회사에서 운동 비용을 대주니 그 돈으로 수영을 배우라고 했다. 사실 직원들에게 운동 비용을 대주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그것이 가족에게까지 혜택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거짓말도 한몫하여 엄마는 결국 수영장에 등록했다.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차를 끌고 엄마와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등록했다. 하지만 수영은 자신 없다며 아쿠아로빅 반으로 등록하셨다. 수영이면 어떻고 아쿠아로빅이면 어떠랴, 어쨌든 엄마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지. 등록 후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사드렸다. 엄마는 들뜬것 같으면서도 불안해했다. 심지어 첫날에는 폐쇄공포증에 대한 꿈까지 꿨다고 했다. 엄마는 이런 분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막상 가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엄마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 역시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아쿠아로빅이 몸에 무리가 가는 운동은 아닌지.. 등등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는 재미있었다고 했다. 50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다고 했다. 이후 나는 엄마를 위해 수영 용품을 하나씩 장만했다. 수영 수건, 세면 용품, 수영 가방 등이 택배로 배달될 때마다 엄마는 관심 없는 듯 했지만 내심 즐거워했다. ‘돈 좀 아껴써라’하시면서도 수영장을 갈 때마다 잘 챙겨다니신다. 

또다른 작은 바램이 있다면 앞으로의 색칠 공부를 확장하여 그림 그리는 것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워낙 치매를 걱정하셔서 몇 년 전에는 퍼즐을 사드렸다. 퍼즐 박스만도 20개가 넘는다. 하지만 공간만 차지하고 어려워서 재미없다고 하셔서 대안으로 찾아본 것이 색칠공부였다. 색칠 공부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면서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치매에 효과적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마도 절대 그림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가지 않으실 것이다. 엄마는 엄마 자신을 너무 낮춰버리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다. 색감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왜 용기를 못내는지 안타깝다. 결국 죽으면 그만인데, 여러 다양한 것들을 도전해보면 좋으련만.. 자식으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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