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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이사를 가기로 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사를 해보지 않았다. 단독 주택인 우리집은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집은 아니다. 낡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긴긴 여름을 에어컨 없이 지내왔다. 전기세가 아까웠던 엄마는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이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는지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우리집에서 에어컨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전기세가 두려웠던 엄마는 에어컨 켜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긴 여름 동안 에어컨을 켠 횟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평소 같으면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빠였지만 에어컨을 켜는 날이면 아빠는 거실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때는 그런 아빠가 왜 그렇게 얄미웠는지.. 나는 빨리 에어컨을 끄자고 싫은 표정으로 툴툴댔다. 사실 나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 선풍기 만으로 충분히 여름을 날 수 있다. 하지만 유난히 여름을 타는 아빠는 선풍기의 바람만으로 여름을 보내기가 힘겨웠을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가 했던 못된 행동들만 떠오를 뿐이다.

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집은 내 나이만큼 오래됐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는동안 벽은 금이 갔고 문은 늘 삐걱댔다. 그러더니 몇 년전부터는 벽에 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은 큰 균열이었다. 아빠가 계셨다면 큰 균열이 생겨도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예전에 목수일도 했었고 유난히 손재주가 좋다. 집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아빠 손을 거치면 문제는 금방 해결되었다. 또 꼼꼼한 아빠의 성격 때문에 해결된 문제는 영구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해결되었다. 그래서 집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누구 하나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분명 예전과 같은 크기의 균열이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더 이상 같은 크기의 균열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은 우리는 집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회의를 했다.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집을 새로 지으면 좋을지를 놓고 끊임없는 고민과 회의를 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가 걱정이었다. 이미 남편을 잃었기 때문에 큰 변화를 겪은 후인데 이사로 인한 환경 변화까지 겪게 하는 것은 엄마의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최종 결정을 엄마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중요한 문제는 아빠가 결정했었기 때문에 엄마는 큰 결정 앞에서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고, 쉽게 주위 의견에 휘둘렸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국 엄마는 남아서 집을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했다. 

솔직히 나는 이사를 원했다. 아빠를 죽게한 사람들의 얼굴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손이 안간 곳이 없는 집이다. 이곳 저곳을 봐도 온통 아빠를 생각나게 하는 공간인 집이었기 때문에 죄책감이 시도때도 없이 고개를 드는 집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남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는 엄마의 결정에 한마디 이견도 제시하지 않고 수용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무섭다’는 표현을 쓰셨다. 처음에 나는 그 의미를 단순히 망자, 혹은 영혼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어떤 의미로 ‘무섭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늘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던 엄마였지만 그만큼 아빠에게 의지를 해왔던 것이다. 엄마에게 그런 버팀목이 없어지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내가 어떻게 40년 넘게 살아온 부부의 감정을 알 수 있겠는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상속 문제를 처리하면서 건축사를 알아보았다. 박람회도 다녀보고 주위 새로 지은 집이 있으면 견학도 가보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빠의 부재는 여실히 드러났다. 늘 집에서 벌어지는 대소사는 아빠가 챙겨왔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그 누구도 집안일 관련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집을 짓겠다고 결정했더라도 없던 관심이 생겨 날리 없었다. 재건축을 하기로 했으면 건축사를 알아봐야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건축 매니저와 미팅을하고 계약을 했다. 나 역시 여러 건축사를 알아보고 비교해서 계약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미팅한 곳과 덜컥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작고 큰 결정의 연속이었다. 집의 구조에 대한 의견부터 인테리어 선택까지 매 순간 결정의 시간들이었다. 아빠는 그 모든 선택을 내게 일임하고 떠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빠가 더 그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기쁜 마음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집을 잘 지으셨을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짜증내고 화도 내셨겠지만, 혼자서 외롭지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셨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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