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들은 주말마다 가까운 근교를 자주 갔다. 평소에 여행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누구하나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생과 나는 느낀 것이 많았다. 아빠와 추억이 없다는 것과 아빠를 위해 우리가 했었던 일들이 많지 않았던 것에는 무언의 공감이 있었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인터넷 검색을 하고, 맛집을 검색하고 우리 셋은 한달여간 주말마다 여행을 했다.
평소 우리 가족은 여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의도적이었다. 평소 짜증을 자주 내던 아빠와 여행을 하면 기분좋게 출발했던 여행이었지만 분명 화나고 지친 상태에서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자는 말을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40년 넘게 하지 않았던 여행을 하려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여행은 계획 없이 떠나도 좋다지만 그것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항상 생각한다. 아빠도 함께 있었으면..하지만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우리가 여행이라는 것을 계획했을까? 분명 가족 단위의 여행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어떻게해볼 도리가 없어서야 후회라는 것을 하게되니..
평소에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았던 우리는 한달만에 녹초가 되었다. 의무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한달간 주말마다 여행을 했더니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동생은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해 했고, 동생이 졸음 운전하지 않기 위해 옆좌석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 줘야했던 엄마도 피곤해 했다. 나는 나대로 주말에 일하지 않기 위해 금요일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했기 때문에 피곤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의무적으로 여행을 했다. 무엇보다도 동생과 나는 엄마가 아빠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곳에 눈을 돌렸으면 하는 마음에, 또한 아빠가 살아 계셨을 때 하지 못했던 여행이라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여름이 시작되었다. 아직 여름이라 하기에는 이르지만 매년 여름은 빨리 시작되었고 늦게 물러나고 있다. 겨울이라는 경쟁자를 압도하여 혼자 살아남을 기세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 더 이상 당일 여행은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우리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가을에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40년 넘게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여행을 계획 중이지 다녀온 것은 아니다. 제주도 중에서도 어디를 가봐야하는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엄마는 엄마데로 비싼 여행 경비가 걱정이라 가지 말자고 하고 있으며, 동생은 관심이 없다. 결국 세부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가끔 화가 난다. 나를 위한 여행도 아닌데 왜 나만 고민하고 에너지를 쏟어야하는지.. 이제 이런 고민도 의미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가장이 된 순간부터 내 시간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