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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서 Apr 21. 2020

신입이여, 그래도 될 때다.

어째서 나는 이다지도 미약한가 를 되뇌는 당신에게.

신입의 고충이라는 것은 비단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팀장이 된 내가 이것을 미처 보지 못해 그들의 고충을 알 수 없었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라고 변명을 먼저 깔아본다. 첫 회사도 지금 같은 작은 스타트업이었고, 너무 작고 소중해서인진 모르겠지만 입사하고 한 달만에 사수가 나가버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당시 회사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았던 인재로서, 도피를 하되 그 준비를 다 마칠 녘에 내가 나타났던 것 같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사수가 없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연구하고 머리 굴려가며 이래저래 짬을 쌓긴 했지만 그다지 인사이트가 나올 법한 양질의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했는지, 이 결과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리 만무하였고 그 상태 그대로 경력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일반적인 신입들의 고충에 공감할 수 있는 접점 또한, 없었다.


혼자 일하는 것이 버릇이 되고 혼자 판단하는 것이 기준점이 되어버리면 혼선 조차 없다. 누군가가 피드백으로 신경 써주고 때론 괴롭혀줘야 뭐라도 꿈틀 한다.




신입 대부분의 고민, 나는 왜 이런가.


그렇더라. 몰랐다. 아니, 애초에 그런 고충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내 위치에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나 할 줄 알았지 누군가에게 사려 깊은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가 괴로워한다는 것도 몰랐다. 지금까지의 신입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다들 바빠 보이고 알아서 척척 잘만 하는데, 난 왜 이렇게 느리고 못하고 물어볼 것만 많지'

그렇구나. 그런데 당연한 거 아닌가? 당신이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질문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고, 신기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면 경력이 신입과 다를 게 뭔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한데, 이런 생각을 왜 하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구나.


어리바리, 내가 지금 뭘 하고 있긴 한 건가, 뭘 하고 있긴 한데 이게 맞는 건가 싶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있을 때 이를 아무도 살펴주지 않고 실수도 괜찮다고 때론 말해줄 누군가가 없으니,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카오스에 빠지는 것이다. 대부분 사수들은 신입이 들어오면 처음 며칠은 의식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나름대로 준비해서 뭘 알려주기도 하고, 신경도 써보지만 결국 자기 일이 먼저고, 급하고, 중요하고, 또 사실 그게 맞고. 어느 순간, 이 어중간한 경계에 놓인 뉴비는 누구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각박하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올챙이 적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방목이라는 명목 아래 방치한 것이다.

라떼 스킬을 꼭 4050 꼰대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들을 그대로 방목한 우리 자체가 라떼인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해주자. 사람은 누구나 그럴 때가 있으며, 그래도 된다고.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어!'를 문 앞에서 결연히 외쳐도 회사라는 공간에만 들어오면 나만 바보로 느껴지는 듯한 이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실무에 빠삭해 보이는 내 사수도, 뭐든 알아서 척척 해결하는 팀장도 다 그런 때가 있었다. 신입에게는 신입의 역할이, 팀장에게는 팀장의 역할이 있듯 각자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외치자.  정도면 오늘 괜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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