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서 발생한 인류의 반란. 과연 화가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북유럽 네덜란드로 그림 여행을 떠납니다. 네덜란드 하면 풍차의 이미지가 그려지고요, 나무로 만든 나막신과 넓은 곳에 한없이 심긴 싱싱한 튤립과 짙노랑색의 동그란 치즈 덩어리가 떠올려지는데요,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루벤스와 브뤼겔의 협업 작품인 “에덴동산의 타락”이란 작품인데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약 2시간대에 있는 헤이그의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에 있습니다.
천장이 인상적인 The Hague Central Station 헤이그 중앙역(The Hague Central Station)에 하차하셔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으니 천천히 걸으시며 이 도시를 먼저 감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과거에 이준 열사의 헤이그 밀사로 우리와 역사 속에서 인연이 깊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도시에 그 유명한 얀 베르메르(Jan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이 있는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Mauritshuis)이 있는 곳입니다.
이 한 점의 그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술관의 가치를 알 수 있겠죠. 이곳에서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가져온 16, 17세기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오늘 우리가 만나 볼 창세기의 사연을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조용한 호수가 곁에 있는 이 미술관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과 함께 네덜란드 3대 미술관에 꼽힙니다.
미술관 앞에 서시면 마치 중세 건물이나 영주의 큰 가정집 같은 풍경이라 그 느낌이 남다릅니다. 특히 미술관의 정문인 계단을 보시면 그런 느낌이 옵니다. 중세 복장을 한 집사가 나와 옷이라도 받아 준다면 영락없는 영주의 초대를 받는다고 착각하실 겁니다!
“작은 미술관 중 가장 위대한 미술관”으로 불리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Mauritshuis) 전경입니다.
미술관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브라질 총독 마우리츠의 이름에 연유한 이 미술관은 루이 보나파르트 당시의 헤이그 국립 미술관의 컬렉션을 모태(母胎)로 하여 1820년에 개관되었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입니다.
낮은 계단을 올라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탄유리 같은 작은 공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섭니다. 극도의 화려함이 배제된 중세의 평범한 건물이란 인상을 줍니다. 바로 앞에는 높이가 낮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옆으로 붉은 카펫과 함께 놓여 있고 대리석과 같은 계열의 옅은 베이지 색의 벽과 천장이 일체를 이루어 소박한 느낌입니다.
우리가 찾아갈 방은 바로 왼쪽에 있는데 방입니다. 정식 이름은 Room 2, Flemish Masters One입니다. 붉은색으로 내려진 긴 커튼을 옆으로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 벽에 이 그림이 자리하며 우리를 반겨줍니다. 플랑드르 지방의 최대 화가의 방으로 들어가 중세 그림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까요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보통 한 명이지만 이 그림은 두 명의 화가가 함께 그렸습니다. 플랑드르의 두 거장인 루벤스와 브뤼겔입니다. 당시 루벤스는 유럽 각지로부터 많은 물량의 그림의 주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밀린 주문량을 해소하고자 공방을 차려 이런 협업을 통해 빠른 시일 안에 그려 주문자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협업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이 명작으로 남게 된 것은 두 화가의 천재성에 기인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우선 친구 사이였습니다. Rubens가 Brueghel아이들의 대부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래서 이 그림에서도 협업을 넘은 우정의 산물인 최고의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또 하나는 주문자가 두 거장에게 돈을 같이 지불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즐겁게 일을 했겠죠.
기록으로는 Peter Paul Rubens가 아담과 이브, 나무, 말과 뱀 등을 그렸고 Jan Brueghel the Elder이 식물과 다른 여러 동물들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략히 언급하면 각자의 전문 분야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드러난 그림입니다. “사람은 루벤스가 자연은 브뤼겔이”라는 문구가 어울립니다.
이들이 순조로운 협업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의 서명입니다. 그림 하단에 자신들의 서명을 같은 체로 기록했습니다. 특수 현미경으로 조사해 보니 두 글씨체에 사용된 페이트가 동일한 색입니다. 같은 시간에 함께 서명했다는 의미입니다. 16세기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기쁨을 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 두 화가의 사인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작은 일화가 있습니다. 처음 이 그림이 시작될 때, 브뤼겔이 먼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이 그림의 패널을 준비하며 전체 그림 구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루벤스 화방으로 옮겨져 루벤스의 그림이 그려지고 그리고서 다시 브뤼겔의 화방으로 옮겨져 나머지 그림들이 채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에 둘이 함께 서명에 날인했습니다. 한 그림 속에 두 명장의 사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한 명화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을 분석하고 감상하기 전에 구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동그란 원 3개가 보입니다. 왼쪽에 작은 원이 있고 중간에는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따라 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완전히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 보이는데 이곳에 더 큰 원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큰 원이 보이는 구도인데 이런 구성으로 인해 나무 아래에 있는 장소가 답답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다음으로는 좌우와 상하를 3 등분하는 선입니다. 좌우에 있는 나무 두 그루가 노란색 선을 만듭니다. 상하는 이브의 왼손 끝과 허리를 기준으로 청색 선을 만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특별한 구도가 보입니다. 동물들의 방향을 보면 중앙을 향해 있도록 했습니다. 마치 중앙으로 Zoom-in 하는 것처럼 몸의 방향을 틀고 있는데, 이런 구성의 결과로 더 깊은 에덴동산 숲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안내합니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소들을 단어별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요소들에 들어있는 상징이나 의미들은 다시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에덴동산의 나무는 모두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지만 화가는 성경 속의 구절을 강조하기 위해 두 나무만 특별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두 나무의 공통점은 열매가 풍성하다는 것인데, 아담과 이브가 머물고 있는 왼쪽의 선악과를 맺고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오른쪽에 양이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생명나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9)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사람입니다. 죄가 없는 곳이기에 부끄러움이 없어 옷이 필요치 않아 알몸입니다. 사실성과 자연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온몸을 보일 수 있도록 몸의 방향을 관람객 쪽으로 돌렸습니다. 다른 요소보다 훨씬 크고 또 색상도 밝게 그렸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세기 2:5)
그림 오른쪽에는 흐르는 물가 근처에 여러 생물과 공중의 생물 그리고 물속의 생물들이 있습니다. 이 흐르는 물은 에덴동산을 흘렀던 4강을 대표합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 2:10)
“첫째의 이름은 비손(Pishon)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Gihon)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Tigris)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 (Euphrates)더라” (창세기 2:11-14)
오른쪽에 무서운 맹수 두 마리가 소 앞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죄 아래에 있는 지금의 표현으로는 다툰다고 하겠지만 저 당시에는 놀고 있는 광경입니다. 그 옆에는 살진 소가 있고 아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악어의 모습도 보입니다. 앞의 수사자가 있는데 쳐다보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나랑도 놀아줘’ 하는 모습입니다.
여러 동식물들이 그려져 있지만 가장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동물은 뱀입니다. 아담과 이브와 죄의 연결고리가 되는 중요한 그림 속 요소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창세기 3:1)
인류의 첫 사람, 첫 부부인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과 관련된 모든 주제의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사람을 보면 단번에 루벤스 특유의 화풍을 직감합니다. 튼실한 생동감을 느낍니다.
인류 첫 남자인 아담부터 볼까요?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직업인 노동에 몸이 베어선지 근육이 발달된 건장한 모습입니다. 루벤스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당시 미술사의 대변혁을 일으킨 르네상스를 직접 경험하고 배웠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해부학에 능했기에 몸의 근육은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바위에 앉아있을 뿐인데 근육으로 인해서 남성미가 넘칩니다.
헤어스타일은 지금 시대의 미용사가 머리를 만졌다고 할 정도로 세련미가 있어 보이고 턱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얼굴이 꽤 친근해 보입니다. 화가는 아담의 얼굴을 그릴 때 고민을 꽤 했을 것인데 결국 턱수염을 지닌 사내로 결정했습니다. 턱수염을 가진 남자 아담의 모습입니다.
이번엔 첫 여성이자 첫 아내인 이브를 볼까요? 이브도 몸에서 풍성한 생명의 느낌이 전해집니다. 여성이라 근육은 삼갔지만 몸의 구조가 발달되게 표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쳐다보면 아주 먼 옛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죠? 왜 그럴까요? 시대와 유행 감각을 느끼게 하는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이웃의 부부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누드의 장점이라고 해야겠네요.
화가는 이브의 표정을 밝게 드러나도록 그려 관람자의 눈에 강하게 인식되게 했습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전달하려는 순간이므로 여성 특유의 유혹적인 몸동작과 몸 빛을 만들었습니다. 몸에 연한 핑크 빛의 색감을 많이 넣고 화사하게 그린 이유입니다.
약간 오른쪽으로 수그려져 있고 서 있는 자세도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이기에 강압적이거나 긴장감보다는 여성 특유의 애교와 성적 느낌이 묻어납니다.
이 작품을 해석할 때 아담과 이브의 내면과 외면을 표현하는 상징성을 발견한다면 더욱 흥미로운 감상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중세 명화에서는 주인공 주변의 물건들에 어떤 상징이 담겨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 곁에 동물들이 보이죠? 에덴동산이기에 당연히 보이는 동물들을 활용한 상징입니다.
강인한 힘의 상징인 말이 아담 곁에 있습니다. 근육으로 뭉쳐진 아담을 더욱 남성스럽게 하며, 이브 곁에는 눈망울이 큰 노루(사슴?)가 있습니다. 큰 눈이 너무 아름다워 풍만하며 이브의 가슴 바로 옆에 있어 더욱 여성적인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말과 노루를 활용한 구성은 인류 첫 남자와 첫 여성을 생기 넘치는 남성과 여성 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브의 몸은 앉아있는 아담과 달리 콘트라포스트 자세를 지니고 있어 더욱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연한 핑크 색을 더했고 긴 생머리에 햇살이 반사되어 찰랑거립니다. 아담을 유혹했던 기록에 어울리게 묘사했습니다.
아담 곁에 칠면조와 원숭이가 있습니다.
평범할 것 같은 이 원숭이는 기독교 회화에서 특별한 도상을 지닙니다. 그림에서 살펴보면 지금 원숭이가 선악과를 손에 들고 이미 먹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의 생물학적 행동을 활용한 도상입니다. 원숭이는 과일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서 먹고살기 때문에 결국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임을 알려줍니다.
또 하나는 칠면조입니다. 칠면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얼굴에서 목에 이르는 피부의 색이 7가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만약 피부색이 8가지였다면 ‘팔면조’ 9가지였다면 ‘구면조’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이 칠면조는 원래 북중미에서 야생하던 조류인데 스페인 정복자가 식용을 목적으로 유럽에 가져갔다가 가축화된 칠면조가 다시 북중미로 옮겨져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칠면조에는 야생의 들칠면조와 집에서 길들인 가축용 칠면조의 2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칠면조가 왜 아담 쪽에 등장해 있을까요? 화가가 그냥 그린 것일까요? 이 칠면조의 생물학적 생태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위장에 능하며 눈치가 아주 빠른 영리한 면이 있는 조류라는 것입니다. 위장이란 단어가 눈에 띄죠? 이 역시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난 후에 나무 뒤에 숨은 기록이 있는 점과 하나님을 속이는 기록을 참고한 상징적 동물입니다.
이번에는 곁에 있는 이브에게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귀여운 강아지가 이브 곁에 있습니다. 마치 자신을 그리는 화가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중세 그림에서 강아지는 순종이라는 좋은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브의 탄생 배경에 남편을 돕고 순종하며 함께 잘 살게 하기 위해 창조된 배필입니다. 처음 창조된 내력을 담고 있는 상징적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브 발뒤꿈치에 고양도 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얼굴을 이브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있습니다. 꽤 친하게 보이죠? 이 고양이는 귀엽지만 사탄의 도상입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이브의 몸과 밀착을 한 상태입니다. 그만큼 사탄에 완전히 넘어간 마음 상태임을 알려 줍니다. 죄 아래 놓인 인류의 표현입니다. 더욱이 이브 다리 뒤로 몸을 숨긴 장면은 범죄 후에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구절을 대변합니다. 죄성에 이미 물들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는 듯하게 표현한 이유입니다. 멀리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게 그려진 이유입니다.
에덴동산에 관한 그림은 보통 2종류의 그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순종이라는 죄를 범하기 전의 에덴동산의 상황이며 또 하나는 죄를 범한 후의 에덴동산 상황입니다. 전자는 풍성함과 완전한 자유와 평안이 있고 후자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뱀이 등장하며 긴장감이 흐르며 불순종의 죄가 드러납니다. 이 그림은 후자의 그림입니다.
사탄인 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동물들 중에서 무섭거나 소름 돋는 것을 제외하고 피부의 아름다운 색과 디자인 면에서 살펴본다면 단연 뱀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비늘로 이어지는 다양한 색감과 색조는 정말 눈부십니다. 성경 구절대로 한 순간 인간과 적이 되었기에 뱀만 보면 사람들은 놀라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느 동물과 달리 뱀에 대해서는 인간이 원초적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림 속 뱀을 보면 나무색과 비슷하게 그려져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화가는 뱀이 진리를 숨기고 접근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그렸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화려함이 있습니다. 화가는 뱀의 머리에 깃을 더해 사탄이나 악마적인 면을 돋보이게 그렸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렸 다기보다는 사탄의 의미가 드러나게 그린 것 같습니다.
지금 뱀의 몸통이 선악과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데, 이는 선악 나무를 이미 장악한 상태이며 아담과 이브의 마음 역시 완전히 장악한 상태임을 표현합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이해하자면 아담과 이브가 죄 아래에 있는 상황임을 상징합니다.
아담이 바위에 걸터앉아 이브가 전해주는 과일을 전해 받고 있습니다. 화가가 표현한 범죄 현장은 죄의 전달과 연결 고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선악과가 이브의 손에서 아담의 손으로 전해집니다. 이것은 악의 전달이란 표현이 되며, 뱀이 전해준 선악 열매를 받는 것은 악과 연결된 연결고리란 표현이 됩니다.
이것은 사단이 전하는 죄에 물들게 되면 전염성이 발생해 전달과 연결 고리를 통해 확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손을 보면 왼손으로 이브에게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듯한 손동작을 취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과일임을 이브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과일은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입을 보면 아담과 이브의 입이 조금 벌어져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입니다.
뱀의 입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핏 보면 이브가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다가 아담에게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뱀이 선악과를 가지 채 부러뜨려 이브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없던 동산에 뿌리로부터 분리되어 곧 말라죽을 줄기의 한 부분입니다. 그만큼 사단의 공작이 치밀함과 공격적임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설명한 영상이나 미술관 큐레이트의 해석을 찾아보면 아담이 걸터앉아 있는 바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위가 평평하죠? 이렇게 묘사해 놓은 것은 금지시킨 과일에 호기심을 느껴선지 이곳을 자주 찾아왔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실제로 이 나무를 묘사한 것을 보면 유난히 눈에 띄며 아름다운 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선악과에 대해 창조주도 묘사했고 피조물인 이브도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나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비교해 보니 창조주가 묘사한 것 외에 인간이 묘사한 것에는 지혜에 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롭습니다. 창조주가 묘사한 것과 인간이 묘사한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혹시 감상하시다가 경고음 들으신 적 있으세요. 저는 정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뉴욕의 클로이스트 미술관에서 로봇 칼뱅의 ‘수태고지’를 감상하다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서 봤는지 뒤에서 제지를 하더라고요. 아마도 몰래카메라나 일정한 선을 넘으면 경고가 발생해서 경비원이 오게 되어 있는 시스템 같았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감상하는 누구에게나 경고음이 삐--- 삐--- 삐--- 울립니다. 들으셨나요. 아직 듣지 못하셨다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셔서 다시 들으셔야 합니다. 화가는 분명히 그림 속에 재치 있게 이 경보장치를 달아놓았습니다.
앵무새입니다. 가정용으로도 많이 기르고 있죠. 지능이 좋아 계산 능력도 있고 여러 가지를 찾는 능력까지 발달되어 있는 새입니다. 특히 기억력이 좋아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새가 분명히 고개까지 돌려서 쳐다봅니다. 이들의 행동에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혹시 사극을 좋아하세요?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사극에 꼭 등장하는 부분에 사약을 마시는 장면이 있죠? 거부할 수 없는 왕명으로 내리는 독을 마시게 함으로써 죄인에 대한 법집행을 실시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 부부를 창조하시고 죽음이 없는 완벽한 자연환경이 조성된 그림 속 에덴동산을 만들어 이 땅에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인 첫 인간 부부가 위에서 본 것처럼 사단인 뱀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에게 허락한 지정의와 완전한 선택이 가능한 자유의지(will)를 자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어 보려던 엄청난 죄를 저질러고 곧 발각이 됐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판결하겠습니까? 보통은 범죄자인 아담과 이브를 그 자리에서 멸절시키고 인류 창조 계획을 철회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 동의하시죠? 아마 백이면 백 모두가 당장 멸절 시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립니다. 이미 인간이 지닌 원죄를 인간 스스로 없앨 수 없는 처지였기에 하나님 스스로 인간으로 태어나 그 원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신 피 흘려 죽는 것으로 심판을 종결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 대신 죽어줌으로써 재판을 마친 것입니다. 땅땅땅. 신기하죠? 한편 어이없기도 합니다.
후에 시간이 흘러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될 때 예수가 약속대로 인간으로 태어나고 33년 6개월을 이 땅에 사시다가 기록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됩니다. 그렇게 피 흘려 죽을 것임을 판결로
아담 머리 위에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주위는 나무 바로 아래이기에 어둡지만 이 부분만은 환하게 드러냈습니다. 마치 관객들에게 “아담과 이브에 대한 판결 내용이 바로 이곳에 있다”라고 알려 주는 듯합니다.
비록 푸른 포도이지만 포도의 상징은 포도주이며 포도주는 피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서 방금 판결을 내린 대로 인류의 원죄를 대신지고 죽음으로서 원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임을 알린 것입니다.
순둥이 수사자 옆에 있는 염소가 나무를 오르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동물 중에 유일하게 나무에 오르려는 행동을 취하고 있어 어떤 상징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감상할 때 관찰은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 나무가 영생과를 지닌 과일나무임을 안다면 이 동물은 악을 상징하는 염소가 맞습니다. 중세 회화에서 양과 염소는 대조되는 동물입니다. 양은 선하게 염소는 악 또는 불순종의 상징을 지닌다고 보시면 됩니다. 염소에 대한 여러 구절이 있지만 대표적인 구절을 찾아봤습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마태복음 25:32)
이곳의 표현에서 왜 나무에 오르는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아 염소를 등장시켰을까요? 성경 기록에 첫 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가 들어온 이후에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 까지 먹고 영원히 죽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하나님이 아담 부부를 에덴동산에서 내 보냈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를 오르려고 하는 것은 창조주의 마음을 역행하는 행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을 드리니 이해하기 쉽죠? 명화는 이렇게 정밀하게 분석해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에덴동산의 그림을 보더라도 이 한쌍이라는 주제는 늘 등장합니다. 이 역시 그림의 배경인 성경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창조 명령 중에 번성하라는 첫 번째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한 쌍이 주인공인 아담과 이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1:28)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을 화가지만 이 그림에는 홀로 있는 동물들이 꽤 많습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저의 생각으로는 숫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 쌍인 두 마리씩 그리자면 여백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예로 오른쪽의 사자와 다른 동물들을 보십시오. 덩치도 큰데 한 쌍이면 옆에 또 그려야 합니다. 그러면 오른쪽에 여백이 없어져 꽉 막힌 그림이 되겠죠. 그래서 대표되는 생물 한 마리만 그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래는 한 쌍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혈육 있는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 2:18)
이 화폭 속에 그려진 생물의 숫자는 몇이나 될까요? 이 그림 속의 생물 숫자가 미술사에서 관심이 되었던 적이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자료 조사를 해 보니 약 100마리 정도가 된다고 하네요. 화가의 정성이 느껴지고 집중했을 때 뿜어냈던 화실의 냄새도 맡아지지 않습니까?
루벤스는 왼쪽의 아담과 이브, 생명과일나무와 말, 뱀을 그렸고 그 외의 동식물은 브루게이 그렸습니다.
눈여겨볼 요소는 화가 브뤼헬이 살았던 북유럽에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생물체가 많이 등장합니다. 북미산 칠면조, 남미산 카푸 친 원숭이, 뉴기니의 새, 낙타, 코끼리, 사자, 호랑이… … 특별히 열대에 사는 귀여운 악어까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은 이런 생물은 브뤼헬이 동물원에서 보고 확인 후에 그린 것으로 추측합니다. 공상에서 나올 수 없는 실제 했던 생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물 중에서도 특히 전면 아래에 그려진 화려한 공작새는 압권입니다. 세밀하게 그려내는 사실화가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그림입니다.
이에 관한 에피소드도 남아 전해지는데요. 15세기 북유럽 사람들의 문화를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로는 공작새는 다리가 없다고 알려졌답니다. 그러나 화가 브루게은 이 새의 다리를 관찰한 후에 사실적으로 그려 사람들에게 조류학 공부를 시켰다는 것이죠. 남부 이태리에서 미술이 성경책 역할을 했을 때 북유럽에서는 조류학 교과서 역할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생물학부분관 관련된 단어 중에 제가 눈여겨보는 것은 “함께”하는 단어입니다.
야생생물과 인간이 함께 잘 지내는 것이 확인됐고 적대적인 동물들도 함께 잘 지내고 있는 것도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야생동물들의 본성에 약육강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반증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함께하는 단어가 이 에덴동산을 묘사하는 것에 계속사용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이사야 11:6)”
이 작품에는 화가의 눈 속임이 있습니다. 혹시 보이세요? 마치 죽은 것 같은 나무가 있습니다. 비록 식물일지라도 완전한 장소로 묘사된 에덴동산과는 맞지 않는 기록입니다. 이 작품 속에는 2 군데 있습니다. 왜 화가는 이렇게 묘사했을까요? 화가가 배경인 창세기의 기록을 부정할까요? 아니면 관객을 속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새들을 많이 등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숲에 알록달록한 새들이 많이 등장하면 화려하고 풍성한 숲으로 묘사하기 쉽겠죠? 그 목적을 위해 나무줄기만 그렸고 나뭇잎을 없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에 새들을 올렸습니다. 아름답고 귀여운 형형색색의 새들이 가지에 앉아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기라든가 속임수라기보다는 가벼운 눈속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과학의 기술이 회화 영역에 들어와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중세에 그려진 그림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미술관에 방문하시면 간혹 유리문으로 둘러쳐진 곳에서 연구 중인 작업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화가들이 초기에 그려진 드로잉이나 작품이 완성된 후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특별히 중앙에 있는 강아지 한 쌍에 관한 초기 드로잉이 발견됐는데, 현재의 위치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 거장인 두 사람의 그림을 한 작품 속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가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그림 여행을 위해 발길을 돌리는데 한 곳에 눈길이 갑니다. 그림을 보다가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제작된 의자가 있습니다. 그 의자 제작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집니다.
좋은 미술관이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곳이라 믿습니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나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꾸며진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 그림 여행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하게 내용을 살펴보는 새로운 명화 소개 채널, <내 집은 미술관> 제공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곧
중세로
발길이 옮겨지는 곳,
중세 명화의 관문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