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요즘들어 이 말을 아주 제대로 느끼고 있다. 구정을 맞아 휴가차 잠시 들린 한국이었지만, 원래부터 어디로 떠난적 없었던 듯 내 삶은 이곳에 완연히 녹아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바로 떠나야지! 라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지만, 이 상황은 잠잠해질 기색없이 오히려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내 바램을 비웃기라도하듯 하루하루 심각해져갔다. 벌써 8개월, 반년도 더 지나오면서 가끔 여행객처럼 잠시 머물다 홀연히 떠났던, 사람 온기없이 휑한 공기만 가득했던 내 빈방은 하나 둘 짐이 늘어났고,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될 곳인냥 내 모든것이 안착되었다.
언제라도 떠날 생각에 짐을 늘리지 않았지만, 겨울의 옷을 벗어던지는 봄이되고, 옷가지를 완전히 바꿔야되는여름을 맞아 옷을 한벌 두벌 다시 장만하다보니 비어있던 내 옷걸이는 또 빼곡해졌다.
이달이 지나면 괜찮겠지, 다음달이면 들어갈 수 있겠지. 라는 대책없는 희망의 끈을 잡고싶어, 중국에 있는 월세집을 해약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4년동안 살아왔던 짐이 집안 곳곳 가득했기에, 월세로 나가는 돈이 아무리 아깝더라도 누구한테 부탁해서 집을 빼달라고 말을 할 수도없었다.
그러다 반년을 보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채로 눈만 껌뻑이며 몇 백만원을 날렸다.
처음에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감도 안잡힌채로 몇달을 보냈고, 그 후 반년이 되어서야 단시간내에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에서 일어난 역병에 왜 한국인인 나만 피해를 입어야하지?라는 생각에 월세 한 푼 깎아주지 않는 중국 집주인에게 괜한 꼬라지가 나기도했다.
'코로나가 제대로 터지기전에 한국으로 오게돼서 참 다행이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라 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내 지난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세상에 나처럼 억울하고 일이 풀리지 않는 사람도 없어' 라며 땅꺼지듯 내쉬는 한숨이 그치질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초라함. 그와 함께 지난 몇달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내 자신의 한심함과 허망함이 마음 저 끝 어딘가부터 매일의 일렁임으로 다가와 하루에도 몇번이고 쓰나미처럼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몇 달을 상황탓만하며 허무하게 보내고 나서야 현실의 자각을 끝낸 나는, 지금의 상황에 맞게 계획이 재편성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만 가면 모든것이 다 해결될꺼야. 라고 생각했던 그저 추상적이었던 내 계획은 그저 나의 오만함이었다는것도 깨달았다.
매일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오늘의 나를 어제의 그자리에 머물러 있게 한다는것을 안다. 남들은 매일 한걸음씩 걸음을 떼었고, 매일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나는 그들의 발전을 보며 혼자 뒤쳐진 생각에 마음만 조급할 뿐이다.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의 한 걸음은 왜 이렇게 어렵고 두려운지 모르겠다. 코로나를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내 지난 모습은 나의 이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아주 적절한 핑계였지 않았을까.
글을 써야지.
다짐만 수백번, 결국엔 한 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했던 내 자신을 매일 한심해하며 몇 달을 보낸 후,
드디어 오늘 해냈다.
오늘의 이 한 걸음이 코로나가 종식이 된 후 중국을 다시 들어갈때 나의 날개가 될 밑걸음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