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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Nov 17. 2024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ITF 번외편 ㅡ 몸을 쓰지 않아도 이 또한 태권도 훈련일수 있다.

젊었을 때의 나는, 여러번 말했듯, 기초基礎보다 기이奇異 를 좋아했고, 형식을 거부하는 태도가 파격이자 효율이라 믿었기에, 나는 무조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가리지 않고 배우러 다녔다. 내가 만약 그 많은 기술들을 올바로 체득할수 있는 신체와 감각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나, 내 욕심과 달리 내 몸은 둔하고 무르고 약했다. 또한 만화나 영화처럼 무조건적으로 연습량을 늘려봐야, 다치고 아프고 탈이 나, 훈련을 오래 이어나갈수도 없었다. 나이 예순에, 젊은 선수와 16분이나 치고받을 수 있던 까닭도 다름아닌 그가 바로 타이슨이기 때문이다. 비록 헤비급에서는 작은 편이라지만, 타고난 강골을 끊임없이 단련했으니, 그런 사나이나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강함이란, 타인을 제압하고 파괴하여 증빙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그러지 못할 선에는 품격있게 거절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챈 때가 결혼즈음, 2단 띠를 받았을 때였다. 초단이 되었어도 내 기초는 여전히 부실했고, 기대했던만큼 실력이 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분명 태권도를 좋아했지만, 이유를 알수 없었고, 그저 했던 훈련들의 양을 늘려 더욱 반복했었다. 오죽하면 나의 전임 부사범이자 지금은 본인의 도장을 차려 독립한 산본 사범님이, 아니, 여지껏 전기톱으로 나무 자르는법 알려줬는데, 계속 돌도끼만 쓰고 계시니,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실력이 늘어요? 하고 농 섞인 핀잔을 주기도 했다. 무작정 반복이 아니라, 교본에 있는 자세를 만들어 정확히 치고 차고 움직이려 할때 비로소 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자 거의 반팔십이 걸렸다. 이 방식을 알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다쳐왔다.



처자식과 함께 있는 주말 동안, 유급자와 유단자를 나누어 훈련의 목적을 설정하고, 체계를 나눠 훈련의 방향을 잡는 초안을 써서 도장에 넘겼다. 지금 내 뒤를 잇는 전업 부사범인 콜라 부사범님은, 젊고 성실하고 어여쁜 여성으로서, 흰 띠 때부터 그야말로 군계일학, 괄목상대, 낭중지추ㅡ 진짜 만화주인공처럼 한 번 보면 거의 비슷하게 따라했고, 거기에 전업 부사범이 되어 사현님의 지도까지 받으며, 그야말로 수제자로 다듬어져 그 기술이 일취월장했다. 이미 흰 띠 때부터 솔직히 나보다 잘했으니, 그녀의 태권도는 사현님께 가깝고 나에게는 아득하다. 내가 그녀보다 앞선다면, 여러 무공을 통해 겪은 다양한 경험치와 그나마 어떻게든 아둥바둥 훈련으로 쌓아놓은 체력이므로, 틀의 완성도는 감히 비교할수 없고 그나마 맞서기에서 움직임이나 치고 막는 동작이나 겨우 조언해왔다. 나는 일반 수련자 중 최고 선임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산본 사범님의 부재 와 콜라 부사범의 사이를 메우고 유지하는 동안 이른바 쩜오(ㅋㅋ) 부사범이 된것인데, 나의 지도 보조는 재밌고 신나고 유쾌할수는 있으나, 기술 재현도나 완성도에 있어서는 감히 다른 분들과 함께 할수 없으므로, 주로 부족한 신체 훈련을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나, 그저 안 다치게 운동을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께 적합하여 걸맞다.



그러므로 내게 기초를 배우는 흰 띠 입문자들께, 나는 항상, 어서 나를 넘어서 높은 수준으로 가셔야 한다고, 나는 만화

나루토로 치면 닌자학교 초급반을 맡은 이루카 선생 정도도

못 되리라고 강조하곤 했었다. 지금껏 내 몸과 마음에 흉터처럼 새겨진 훈련의 기억을 끌어모아 글을 쓰니, 나름대로 내게도 훈련의 목적을 개별적으로 설정하고, 체계를 분류하는 역량이 길러졌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나는 한때 대안학교 교사도 했었는데, 그때 역시 그저 파격과 기행이 공감의 원천이려니 싶었던, 치기어린 풋내기에 불과했다. 자영업자의 필독서라 불리는 라멘서유기ㅡ재유기 연작에서 라멘 장인 세리자와는, 그저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감각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했는데 이제야 나도

겨우 그 뜻을 알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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