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by Aner병문

나만 느끼지 않겠지만, 아내와도 이야기하듯, 요즘 텔레비젼에는, 죽어라고 서로 만나게 해서, 결혼은 부자유하니, 출산은 의무가 아니니, 괴롭고 힘드니 해서, 한몫 단단히 챙겨 헤어지게 했다가, 또 외로우니 진정한 사랑을 찾아 다시 만나라 부추기는 방송들뿐인 의심을 지울수없다. 언젠가는 농으로 이러다 누가 제대로 고인 잘 모시는지, 장례 겨루기 방송까지 나오는게 아니냐 한적도 있었다. 전화기에 인터넷만 연결해두면 뭐든지 혼자서도 다할 수 있는듯 호도하면서도, 결혼정보회사며, 만남 앱까지, 결코 손해보지 않는, “똑똑한 “ 만남만을 찾아 헤매이는 경로는 끊임없이 개발된다.



20세기 초, 모더니티 라는 개념을 통해 근현대를 톺아보려 했던 게오르그 짐멜은, 그 유명한 대도시와 정신적 삶, 에서 이미 대도시에서 양립하는 자유와 고독, 이 모순에 대해 지적했다. 갑작스레 인간관계가 불어나니, 도시인들이 모든 인연을 과중히 대했다가는 그 압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가 끝나며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 서야했고,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들은, 대항해시대를 누비며 부를 쌓아올리던 암스테르담에서 이미 대도시의 고독과 자유를 모두 맛보고 있었다. 나 혼자서는 외롭지만, 상대도 나를 당당히 거부할수 있는 주체적인 자유를 소유한 이라는 점이 예나 지금이나 도시인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인간관은 약간 동물적이면서도 쾌락의 에피쿠로스 학파나 다중의 철학자 네그리를 떠올리게끔 하는 구석이 있다. 그는 생물에게는 코나투스 Conatus 라는, 삶을 유지케 하는 긍정적 요소가 있어 모든 생물들은 코나투스가 증진되는 삶으로 간다 했다. 코나투스가 정신에 관여하면 의지가 되고, 육체에 관여하면 충동이 되는데, 인간은 스스로 무엇에

대해 충동적인지 인식 가능하므로, 인간의 충동만을 욕망이라 부르자 했다. 결국.스피노자의 인식, 곧 사유는 코나투스가 먼저 발현되고 추후 그를 사유하게 되니 전적으로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모든 학문의 총합자라 부를만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설이나, 예정조화론은, 결국 주어 안에 모든 본질이 예정되어 있어 신이 꾸려낸 실꾸러미대로 흘러간다.하니 스토아학파가 생각날 정도로 정갈하다. 구판에서 강신주 선생은, 라이프니츠는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능, 불필요하다 했다가 신판에서는 모든 소통이 이미 예정되어 있으니, 조바심낼 필요없다고 순화하였다. 성마르고 우직하고 예민한, 한 학자의 변모를 보는 일도 신구판.비교의 소소한 잔재미다. 하기사 창시자 생전에도 세미나를 하시느라.여러 나라를 돌다보면, 기술을 좀 더 바꾸고 발전된 형태로 알려주시기도 했다 들었다. 중국 전통권에 유독 분파가 많은 까닭이기도 할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음식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