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끝, 밥 잘하는 유진이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
젊었을 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였다. 말없이 물을 받아내는 강 끄트머리의 옹이처럼, 조용히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말하는 것이 물론 아니다. 나는 경박하고 천박한데, 외로움까지 잘 타서, 손 밖에 있는 것들까지 우당탕 달려가서 내 것인양 끌어안으려 안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덜 외롭고, 그래야 더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론 오히려 포용력이 있어 나를 받아주고 이해하려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초반의 예의나 흥미를 잃고 진저리를 치며 떠나가는 이들도 많았다. 주고받은 상처는, 때로는 별처럼 많았다. 이제야 나는 부끄럽고 민망하여 옛 기억에 종종 몸서리친다.
끌어안으려던 것은 비단 사람과 애정만 아니라, 관념적인 지식부터, 몸에 새기는 여러 기술들까지 다양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습관은 여전했으나 젊엇을 적의 나는 따로 방향이 없었다. 그저 손맡에 있는 책이면 무엇이든 읽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무공의 기초를 처음부터 닦기보다 무엇이든 당장 배워 내세울 수 있는 기술들을 선망했는데, 종합격투기의 여러 낱기술들을 무작정 배워 써먹으려 했던 맥락도 그와 같았을 터이다. 그러므로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올바로 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좋든 싫든, 한 조직에서 공유되는 형식을 따르고 되풀이할수밖에 없었다. 조직은 형식의 공유로 유지되는 단일한 성향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 즈음 만난 밥 잘하는 유진이는, 밥도 잘해주었지만, 엄격함과 무서움으로 애정을 표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두번째 사람이었다. 예민함과 날카로움으로 애정을 표현해주던 너와는 또 달랐다. 엄격함과 무서움으로 표현하시던 첫번쨰 분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어머니다. 나는 내가 아비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맥락을 알았다. 너도 애 키워보면 안다, 는 어른들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아내가 이틀간 고생하여 낳은 내 아이의, 나 닮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세상이 내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들을 연달아 느꼈다. 밥 잘하는 유진이는, 가장 엄격한 직장 상사였고, 요리로 잔뼈가 굵은 명인이었다. 차라리 글러브 끼고 맞서기를 하는편이 나았을 터이다. 밥 잘하는 유진이가 도장에 뒤늦게 입문하여 2단 띠를 받기까지, 나는 비로소 밥 잘하는 유진이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아가씨인지, 도장 사형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전까지는 쉼없이 던지는 직장인으로서의 질문에 답변하고, 그 태도에 방어하느라, 나조차도 무척 힘들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했으며, 중간에서 털보 큰형님이 다리도 많이 놔주었고, 무엇보다 밥 잘하는 유진이의 속내가 아무리 봐도 내가 미워서 나가라는 식으로 혼내는건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히 곡절이 있으리라, 끝까지 한번 믿어보자 마음을 먹었던 일이 주효했다. 하여간 한 번 혼내고 나면, 저 스스로도 가슴이 아파서, 항상 주방에서 혼자 뭔가를 꿍꿍 만들고는, 주방에서 식당쪽으로 연결된 창문을 탕탕 두드리며 '병문님 밥먹어요~' 해서 쓱 나가보면, 늘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한두 개씩은 해주곤 했다. 두 손으로 정갈하게 만들어 비벼준 잡채(끝내줌 ㅠㅠ), 배즙 냉면(사람 잡음), 양념통닭(딱 한번 먹어봣는데, 지금까지도 그 맛을 못 잊음. 거의 봉황을 튀겼다 싶은 맛), 돈까스 김치나베(촉촉하게 젖은 장국에 신김치 살짝 썰어넣고, 달걀 풀어 자작하게 쪄낸 돈까스..오..), 아무리 바빠도 소고기 잔뜩 갈아넣은 약고추장에 채소 다양하게 올려비빈 비빔밥이 가장 기본이었고, 저 쉰다고 없는 동안엔 냉장고에 빵에 딸기잼, 땅콩버터라도 발라 쟁여놓고, 나더러 밥 많이 먹는다 투덜대면서도 늘 군소리없이 밥 두번씩 짓는 밥 잘하는 유진이가, 마침내 시집을 간다 하여, 나는 내 결혼 못지 않게, 자넬 데려가는 사람도 인생의 큰 덕 보는구나 하였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곱창이 자글거리는 솥뚜껑 앞에 앉았다. 우리는 짧고 굵게 먹고 마셨다. 요리, 직장, 태권도, 육아, 얽힌 이야기들이 많아 당연히 두시간도 모자랐다. 다만 나는 그 떄에 비해 변한 점이 많았는데, 나는 더이상 방향없이 아무 책이나 무작정 읽어 지껄이지 않고, 무공 또한 태권도로만 정하여 십여년 넘게 훈련하고 잇다. 내가 비록 무딜 망정 송곳처럼 오로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밥 잘하는 유진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밥 잘하는 유진이를 보러 가는 길에 얇은 시집 한 권, 외투 주머니에 찔러넣고 나갔다. 술 기운에 말랑해진 머리로 싯구를 읽으며 즐겼다. 이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너 때문에 약간 더 어른이 되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술 마시며 커피 마시기 좋아하는, 밥 잘하는 유진이를 위해 미리 커피를 사갔고, 밥 잘하는 유진이는 늘상 밑반찬으로 한두 잔씩 먼저 마시는 날 위해, 수란 노른자를 따로 건져 접시에 놓아주었다. 청첩장은 무사히 잘 받았다. 밥 잘하는 유진이는 또다른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아가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