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놀면서 배우는 핀란드 교육 #어린이 편#
“언니~~!! 언니, 오늘도 놀아?”
"응? 아냐~~ 나 공부도 해!!"
“에이~~ 좋겠다아아! 난 언니가 핀란드 가서 맨날 공부만 할 줄 알았는데~~”
핀란드에서 가족과 연락할 때면 동생이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언니가 유학 가서 공부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숲에서 블루베리 땄다~~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링곤베리가 너무 많아서 쨈을 만들었다."
"수업 끝나고 캠퍼스 스포츠에서 수영하고 왔다."
이런 말들을 매번 하다 보니 동생이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결론. 언니는 논다.
핀란드가 놀이를 강조하고 놀이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도 핀란드에 가기 전에 읽었던 책이나 TV를 통해 보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서 핀란드는 노는 것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핀란드에 갔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는지,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노는지였다. 그런데 막상 핀란드에 가보니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다 논다. 이들에게 논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들에게 놀이란 곧 배움이자 삶인 것이다. 내가 관찰한 핀란드 사람들의 '놀이 삶'의 내막을 낱낱이 공개하자면 이러하다. 먼저 어린이들은
# 쉬는 시간에 무.조.건. 나가서 놀아야 한다.
10월이지만 꽤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숲 속에 있는 학교로 들어간다.
신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을 보니 쉬는 시간인가 보다.
핀란드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다들 밖으로 나간다. 유치원, 초등학생 할 것 없이 무조건 나가야 한다. 날씨가 영하 15도가 넘어가고 눈비가 내려도 아이들은 나가서 논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생쯤 되면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는 것이 싫을 만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어둡고 긴 겨울날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적응 연습이자 방법이기도 하다.
겨울철에 밖에 나가기란 아이들에게 꽤나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날씨가 춥고 눈비가 많이 내리는 핀란드 겨울의 특성상 모자+장갑+목도리는 필수이고 스키복과 같이 방수가 되는 바지를 일반 바지 위에 덧입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머리를 제외한 온몸을 우주복 같은 방수복으로 덮어 씌우듯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옷을 입고 벗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 1학년 아이들의 경우는 쉬는 시간에 힘들게 옷을 입고 겨우 나갔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서 바로 들어와야 할 때가 많다. 신기한 점은 어른이 보기에 아이들의 행동이 느리거나 답답해도 선생님은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빨리 하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준비가 된 아이들이 먼저 나가서 놀뿐. 느린 것은 잘못이 아니니까. 느려도 괜찮으니까. 다만 스스로 해보는 것, 혼자 힘으로 해내는 성공 경험은 중요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핀란드 학교의 복도는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물품들로 즐비하다. 겨울철에는 스케이트도 종종 볼 수 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핀란드 교실에서는 신발, 실내화를 신지 않는다. 양말을 신고 집처럼 다닌다. 화장실도 양말을 신고 다닌다. 그만큼 학교 안은 어느 공간이나 따뜻하고 깨끗하다는 증거이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축구를 하는 아이, 숲을 뛰노는 아이, 공을 던지는 아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 등. 아이들이 공을 마음껏 던져도 안전할 수 있도록 학교 벽은 이미 푹신한 재질로 보호되어있다. 이 곳에서 유리창이 깨질 걱정은 NO!
또 하나 정말 신기했던 것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오면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바로 수업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놀아요~~, 힘들어요~~, 추워요" 등 수업의 진행을 방해하는 말은 1도 없다. 마치 모드를 전환하듯, 혹은 스위치를 껐다가 켜듯 바로 '공부 모드'로 전환하여 선생님 말씀에 집중한다. 놀이가 일상인 핀란드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쉽지 않은 모양이다. 곧 노는 시간이 또 올 테니 말이다.
핀란드 학교의 쉬는 시간은 대부분 15분이다. ‘45분 수업+15분 쉬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낮 시간의 중간 쉬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길게 이루어진 경우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중간 놀이 시간을 갖고 있는 학교들이 많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도 2교시가 끝나면 보통 쉬는 시간의 2배인 20분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사라졌지만 말이다ㅠㅠ)
비슷한 듯 하지만 한국과 핀란드의 놀이 시간의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안과 밖'의 차이라고나 할까. 한국 아이들은 중간 놀이 시간의 대부분을 교실 안에서 보낸다. 그래서 학기 초 선생님들의 필수 구매품은 바로 보드게임이다. 아이들의 놀거리들을 충분히 구비해두어야 중간 놀이 시간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 따라서는 바깥 활동을 권장하는 경우도 많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경우도 꽤 있는 듯하다. 정말 훌륭하신 교장 선생님은 쉬는 시간 동안 운동장에 나가셔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임장 지도를 하시기도 한다. 극히 드문 케이스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안전을 위해 바깥 놀이를 자제하라고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 말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집중력을 향상시켜 학업효과를 높인다고 믿는다. 각종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기에 우리나라의 많은 선생님들과 교육자들도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면 정서적, 학습적 측면에서 효과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간놀이 시간도 생기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실내 놀이 활동이 주를 이루는가?'에 대한 나의 경험에서 비롯한 변명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선생님의 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 몸은 하나이기에 운동장과 교실 중 한 곳에서만 임장지도가 가능하다. 바깥 활동을 희망하는 일부 아이들만 내보냈을 경우, 교실 안과 밖 중 어느 한쪽에서든 사고가 났을 때 “교사는 그 시간에 뭐했냐?, 안전 지도를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무시무시한 질책이 이어지고 이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사회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교사를 보호해주지 못하기에 많은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인권, 안전 등의 선한 이유로 교사의 손발을 묶어버린 현실은 알게 모르게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가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만이라도 나가게 해 주면 좋으련만,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꽤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선택지이다.
한국 학교 건물 구조 상 고학년은 4층을 주로 사용하는데, 1층을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가기 일쑤다. 계단 오르고 내리는 것에 귀찮아서 아이들이 안 나간다.
각종 업무들을 쉬는 시간에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바깥에 나가 있으면 처리가 어렵다. 장시간 메시지에 답이 없으면 일처리를 해야 하는 담당자는 속이 터질 것이다.
미세먼지는 새로운 복병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교실 콕!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리한 독자라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길 것이다.
"그럼 핀란드에서는 안전 지도를 안 하나요?"
이에 대한 답은 "한다. 그것도 매우 철저하게 한다."이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순회하면서(학교 규모에 따라 명수는 달라진다.) 안전 지도를 한다. 초등학교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은 모두 다 교실 밖으로 나가 운동장이나 학교 주위 숲에서 논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쉬는 시간마다 순번을 정해 안전 지도를 한다. 안전 지도를 하지 않는 다른 교사들은 모두 교무실에 모인다. 교사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면서 충분히 쉰다. 이 시간 동안 교실에 남아서 다음 수업 준비를 하는 선생님은 아주 드물게 봤지만, 행정 업무를 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수업 외 잡다한 업무가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모두가 쉬고 있어 텅 빈 교실을 학교 청소를 해주시는 분께서 돌아다니며 깨끗하게 교실 정리를 해주신다. 교사에게 참 감사한 지원이다.
핀란드 학교의 교무실은 집과 같은 느낌을 준다.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 전자레인지, 커피와 차, 달콤한 간식 등 편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한국 선생님들 사이에서 '교무실은 고문실'이라는 농담 같은 말이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교무실에 선생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잘못 처리했거나', '해야 할 일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선생님도 쉬는 시간에는 좀 쉬자."라고 다가오는 아이들을 달래 놓고는 정작 쉬지 못하고 틈새업무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 선생님은 화장실 가는 것도 '다음 쉬는 시간에 가자, 점심시간에 가자.' 미루고 미루다 아이들이 모두 다 집에 간 오후에야 갈 때가 많은 것이다. 선생님에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선생님, 저도 온전한 방학을 누리고 싶어요."
학원과 숙제가 없는 방학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 반 한 아이의 깊은 하소연이다. 놀이와 쉼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얘들아, 우리 잠깐 놀이터 나...?"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네~~~~~~~~~~~~~~!!!!!!"하고 이어지는 크나큰 함성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이미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그래, 놀자! 놀아야 공부도 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