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처음 가봤어요

나만 빼고 다 보는 야구

by 시월

공보다 먼저 베이스를 향해 달린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야구 규칙의 전부였다. 야구장에 들어온 검은 고양이가 야구장을 뛰어다니는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야구 카테고리와 가까웠고, 주변에 야구팬이 있었다면 같이 야구장을 찾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워들을 법도 한데, 놀랍게도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스포츠와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새내기가 되고, 야구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혼자 야구장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자연스레 관심이 사그라들었던 것이 바로 야구였다.


오랜 꿈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야구장을 간다는 설렘과 만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마음의 거리는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피어나는 웃음을 안고 잠실야구장으로 들어섰다. 다시 생각해도 스포츠 경기엔 조금 이상한 첫인상이지만, 야구장의 첫인상은 ‘예쁘다’였다. 빨간색 의자와 파란색 의자, 초록색 잔디와 주황빛 모래 그리고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과 강렬한 색들을 조화롭게 묶고 있던 회색 계단. 정말 색조화가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빠져들 때쯤, 두둥실 떠오르던 나의 생각을 순식간에 야구 경기로 끌어당긴 명연이의 야구 속성 과외가 시작되었다.


시끄러운 야구장에서도 또렷하게 꽂히는 명연이의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말들 중 80%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볼, 스트라이크, 아웃, 파울, 플라잉아웃, 안타, 도루, 견제, 태그아웃..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졌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명연이의 말을 이해하고 싶어 초록의 경기장과 복잡한 숫자들이 암호처럼 적힌 전광판을 번갈아 보며 눈알을 바쁘게 굴렸고, 어느새 머릿속에 색조합 생각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경기를 보다 보니 분명 아까 들으면서 머리로는 이해했던 설명이었는데 눈으로 보니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사실 거의 모든 것들이 그래서, 쉴 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데 자꾸만 집중을 깨는 나의 질문이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하나하나 대답해 준 명연이 덕에 빠르게 야구 경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계속해서 점수를 내주기만 하던 한화가 드디어 만루를 채우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선 순간, 경기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 같았다. 볼과 스트라이크가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사람들의 희비는 엇갈렸고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선 내가 경기장에 들어선 이래 가장 큰 응원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득점 때마다 터지던 두산의 꽃가루보다 큰 소리였다. 그 소리를 온전히 들으면서 서있는 타자와 투수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일까. 그 짧은 순간에 어떤 생각들을 할까. 한화의 만루가 삼진아웃으로 사라 지던 순간 나에게 찾아온 아쉬움도 이렇게 큰데 득점의 기회를 날려버린 타자의 아쉬움은 어떨까. 많은 생각이 스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한화 만루. 공교롭게도 아까 만루 상황에 타석에 섰던 하주석 선수였다. 어느새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던 한화의 득점을 바라는 마음과 아까 쏟아진 긴장에 대한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혔다. 뒤에서 나지막이 “진짜 떨리겠다”라고 말하는 주열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또다시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아쉽게 득점 기회를 놓치는 선수를 보며 조 금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만약 저 상황에 있었다면 긴장감을 제대로 이겨낼 수 있었을까 싶었다. 모두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구단에 선수로 발탁되고, 경기장에 선 사람들이겠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함성을 견뎌내며 긴장하지 않고 연습한 것들을 모두 내보일 수 있는 담대함이 가장 필요해 보였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경기장에 있던 많은 선수들 중 하주석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건 두 번의 삼진 기록이 커다랗게 전광판에 쓰여있는데도, 안타를 만들어냈을 때의 통쾌함 때문일까. 어쩌면 무대에서, 카메라 앞에서, 오디션에서 매번 긴장해서 연습한 만큼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나 자신이 겹쳐 보여서 일 수도 있겠다. 나는 만루에서 긴장감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점수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비슷한 매번 나에게 아니라는 답을 내렸던 것 같지만, 이번엔 왠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믿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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