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바탐을 가다. (2)
3개월의 시간.. 그곳에서의 나
09년 2월.
모든 것을 빠르게 준비하고 인도네시아로 가게 된다.
가기 전 현지에 가서 이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와야 했다.
1차 개발분에 대해서 통합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고 2차 신규 개발을 진행하여 나머지 잔여 테스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기 전 나의 가장 큰 걱정은 혼자라는 외로움. 그리고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참으로 컸다. 인도네시아로 가기 전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아야 했기에 서점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도 한 권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출발에는 다행히 같이 동행하는 다른 팀의 직원이 있었다. 여자 전임 한분과 남자 책임님 한분 이렇게 나까지 세명이 같이 함께 했다.
그분들은 1주일 정도의 지원이었고, 나는 총 3개월의 긴 여정의 프로젝트 일정이 다른 점이었다.
인도네시아 바탐으로 가기 위해서는 싱가포르의 공항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항구로 이동하고, 그리고 항구에서 바탐의 섬까지 배로 더 들어갔다.
입국 심사부터 난항이었다.
" 여기 왜 왔냐?"
"아. 나는 여기 여행을 왔습니다."
"어디서 묶을 예정입니까?" 시꺼먼 외국인의 약간의 무서운 어조 여서 인지 긴장감이 더 배가 되는 듯하였다.
어찌어찌 입국 심사를 마치고 호텔에 도착. VISTA라는 호텔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인데도. VISTA 호텔 이름이 기억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도착을 주말에 하였고, 하루 쉰 후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의사 결정이었다.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의가 왔을 때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거는 이런 방향으로 설계되는 게 맞는 건가요?"
"음.. 이 부분은 내부적으로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확인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공감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확인을 해본다는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경력이 많지 않았기에
열심히 찾아보고 어느 정도 확신이 섰을 때 답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하루하루는 나에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떤 질문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도 빠르면 검색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방법이라던지 문의에 대한 대응을 빠르게 답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인터넷 브라우저가 열리다가 끊겨 버리는 ....... 그나마 숙소(호텔) 내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당시 사무실보다 할만했다. 그래서 당일 문의 등 모르는 내용을 숙소에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정말이지 꾸역 꾸역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당시에 회사 팀장님과 전화 통화할 일이 있었다.
"팀장님 이번 달 월급 안 받아도 되니까, 한 명만 더 보내 주시면 안 되나요?"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일 할 1명이 필요했다.
그 당시 호텔에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봤는데 부모님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것 같았다.
2주, 3주, 그리고 1달.. 적응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기본적인 인도네시아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호텔 지배인에서 어느 정도의 네고로 숙박비와 추가 서비스를 제공받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음식들이 맛있기까지 했으며.. 인도네시아 개발자 친구의 집에 까지 초대 받기까지....
또한 여행비자로 프로젝트를 수행했기 때문에 2주~3주 간격으로 싱가포르를 갔다 오면서 입국 심사에 쫄깃쫄깃한 일들(이 이야기는 다음에 에피소드로 별도로 풀어볼 예정)
10년도 더 지난 인도네시아 프로젝트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잠시 해보니, 그건 아마도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엄청난 성장을 했던 아주 좋은 기억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정말이지 3개월의 그 시간을 통해 그 당시 자신감만큼은 최고였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이렇게 했는데, 앞으로 못할게 뭐가 있냐" 딱 이 마음인 듯하다.
당시를 회상해 보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