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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Mar 21. 2017

<미녀와 야수>를 보고

미녀와 야수는 인연이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릴 때 내가 본 <미녀와 야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다.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왕자와 거지>가 떠오른다. 둘 다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 본 <미녀와 야수> 실사판은 예상했던 대로 그런 교훈을 주지는 못 했다.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릴 땐 게스톤과 야수를 외모와 성격, 이 두 가지만 놓고 비교했었다. 동화의 특징이 단순한 구조이니까. 게스톤은 잘생기고 인기도 많지만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이고, 야수는 무섭게 생겼지만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벨이 야수를 선택한 것이고 둘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그 생각을 바꿀 기회를 갖지 못했다. <미녀와 야수>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미녀와 야수> 실사판을 보면서 그 기회가 생겼다. <미녀와 야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어른이 된 나에게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건 야수의 권력과 재산, 인연, 공감대, 취향, 시간 등이다. 단지 겉모습과 내면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게스톤과 야수, 두 사람의 조건이 외모와 내면 빼고는 다 같아야 한다. 하지만 야수는 가진 게 너무 많았다. 야수인 것 빼고는 게스톤보다 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야수는 거대한 성을 가지고 있고 그를 모시는 하인도 거느리고 있다. 야수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서가를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벨에게 턱 하니 선물한다. "이 방과, 이 방에 있는 책 다 너 가져!". 벨만큼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았다. 벨이 엄청나게 부러운 순간이었다. 나에게 도서관 만한 서가가 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에 나에게 그 장면은 동화 그 자체였다. 아무튼! 그건 야수가 가진 재산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벨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그의 섬세한 성격과 벨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인연이 두 사람을 묶어 놓았다. 하필 벨의 아버지가 야수의 성에 있는 장미를 훔쳤고 그를 구하기 위해 벨이 야수의 성으로 왔다. 만약 벨의 아버지가 야수의 성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장미를 꺾지 않았다면, 그 모습을 하필 야수가 보고 있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화룡점정은 벨이 도망가다가 위기에 처하자 뒤따라온 야수가 그녀를 구했다는 점이다. 위기를 함께 겪게 되었고, 벨은 다시 성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 밖에도 두 사람은 취향이 같다. 야수 역시 다독가였고, 서로 책을 읽으며, 읽어주고, 책에 대해 얘기하며 더욱 가까워진다. 벨이 살던 마을에선 책을 읽는, 똑똑한 그녀를 이상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답답하고 외로워했다. '내가 정말 이상한 걸까?' 하지만 야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고, 오히려 그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야수는 그녀를 사랑할수록 더욱 친절해지고, 더욱 다정해지고, 더욱 신사다워진다. 끝내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자신이 영영 야수로 남아야 하는 결말을 알고도 그녀를 놓아준다.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벨에게, 야수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벨이 야수의 매력을 알아챌만한 시간 말이다. 초반 벨이 굉장히 무례하고 까칠하고 무서운 야수의 모습만 보고 헤어졌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벨이 야수의 매력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벨에게는 야수의 매력을 알아볼 시간이, 야수에게는 벨에게 어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야수는 게스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가졌다. 게스톤은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구애를 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공감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무지했고, 마음을 강요했다. 그 어떤 구석을 보아도 게스톤이 벨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볼 수가 없다.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벨을 소유하고 싶은 집착일 뿐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시대를 앞서 나가던 벨이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리가 있겠는가.


단순하게 게스톤과 야수의 대결 구도는 아니지만, 벨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굳이 게스톤을 등장시켰기에 벨과 상관없이 둘을 비교하게 됐다. 그런데 어릴 땐 그 둘의 비교가 가능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예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너무 엉뚱하게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꼬마 소녀였을 때의 나와 30대의 여성이 된 지금 내가 느끼고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 심지어 나는 이 세상에 저 두 사람밖에 없다면 결혼 안 하고 그냥 혼자 살았을 거라는 상상까지 했다. 야수는 첫인상이 너무 무서워서(그의 행동까지 포함하면)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을 것 같고 게스톤은 경찰에 신고했을 것 같다.


많은 조건들이 벨과 야수를 이어줬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면의 진실성만이 두 사람을 연결해 준 것은 아니다라고 30대 여성인, 지금의 나는 <미녀와 야수>를 재해석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사랑과 인연에 대해 깨달은 것은 '야수이든 미남이든, 추녀이든 미녀든 인연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ㅣ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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