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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Oct 10. 2022

레벨테스트 공포체험

학원을 가는 건지 유령의집을 가는 건지

둘째가 새로운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잘 안 맞는 것 같다. 또 학원 알아봐야 한다. 아마도 애들 대입이 다 끝날 때까지 학원에 대한 고민과 회의감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다. 학원 고민을 하다보니 지금까지 경험한, 마치 공포체험 같았던 레벨테스트들이 다양하게 떠오른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요즘 트렌드에 비해 학원을 일찍 간 편은 아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돈 때문이었다. 돈이 없다기보다는...아까워서?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나도 다른 엄마들따라 다들 보내는 학원들을 알아봤다. 한달에 30만원 이상 내고 다니는 영어학원은, 영어유치원 경험이 없다면 파닉스부터 시작한다. 파닉스 과정을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끄는 학원도 봤다. 파닉스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 이 나이 애들 집중력이 한번에 20분쯤 된다. 근데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2, 3시간이다. 그럼 뭘할까? 너무 재미없어서 안 간다고 하면 안되기 때문에 재미있는 걸 한다. 노래부르고 춤도 추고 외워서 발표도 시키고..대체로 학원 갈 때는 즐거워하는데 집에서 숙제를 붙들고 우는 소릴 한다.


그래서 등록을 머뭇거렸다. 애 잡기 싫어서 학원 보내는데 숙제를 봐주다 애를 잡으면 학원을 뭐하러 보내지? 그러자 첫 공포체험이 시작됐다. "어머니~ 요즘은 영어유치원들도 다니는데 초등학교 때도 시작 안하시면 너무 늦어요~ 나중에 갈 학원 없어요~"


그렇다. 알고보니 다 이것 때문에 학원을 보내는 거였다. 사실 3, 4학년 정도만 돼도 언어 감각이 더 좋기 때문에 파닉스 3개월 정도면 휘리릭 떼지 않나. 한글 배워봤지 않나? 3, 4년 배웠는데 단순히 단어 자체를 못 읽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학원 가고 싶을 때 파닉스 반이랑 학년이 안 맞아서, 학원을 못 간다고 한다. 학원 다니던 애들하고 수준 안 맞아서 들어갈 반이 없다는 얘기다.


진짜 그런가 싶어서 집에서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요즘은 온라인 프로그램이 진짜 잘 나온다. 한달에 5, 6만원 정도 한다. 하루에 30분만 해도 파닉스 정도는 뗄 수 있었다. 나머지 돈으로는 산으로 들로, 해외로 놀러다녔다. 

두 번째 공포체험은 큰애 5학년 올라갈 때였다. 진짜 들어갈 반이 없을까? 하고 레벨테스트를 봤다. 과연 큰 애 레벨이 좀 낮았다. 정말 못 들어가? 이때는 제법 공포가 현실감이 있었다. "어머니, 지금 이 레벨로 갈 수 있는 반은 XX반인데(없는 것은 아니군), 단어가 안돼 있어서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반 교재를 보니 집에서 아이가 하던 것보다 쉬운 수준이었다. 별 문제 없어보이는데 왜 그러지?하고 일단 보냈다. 교재는 아이에게 쉬웠고, 두달 뒤 레벨업 평가에서 젤 잘본 축이었다. 오히려 레벨업 못할 하위 두 세명 아이들을 다음 코스에 못 들어갈까봐 점수가 안되는데 올려주는 걸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코로나 정국이 시작되면서 줌수업 시작하길래 바로 중단해버렸다.


대체 한 시간 넘게 낑낑거리고 본 레벨테스트가 왜 아이의 수준을 반영하지 못할까? 아이 친구 엄마들은 "대형 학원들이 다른데서 하다 온 아이들 레벨을 잘 안 준다"고 했다. 진짜 그럴까?


학원을 좀 보내다보니 알게 됐는데, 사실 레벨을 잘 안준다기보다는 정확하게는 애들이 레벨테스트를 잘 못본다. 일단 학원마다 출제 경향이 다르다는 점이 영향을 많이 미친다. 어릴수록 사실 인풋이 별로 없는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학원은 주니어토플을, 어느 학원은 문법을, 어느 학원은 독해를 위주로 낸다. 그러니 또래에 비해 학습량이 많았거나 타고나게 뛰어난 아이들 말고는 레벨테스트를 잘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잘 찍는 아이들도 있다. 기껏해야 영역별 20문제 정도씩으로 아이 수준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또다른 이유는 어릴수록 시험 경험 자체가 별로 없다. 모 어학원에서는 초등학생 레벨테스트 문제에 infer, 즉 추론하다라는 단어가 나온다. 글을 읽거나 듣고 의도를 추론하라는 문젠데 애가 infer라는 단어를 모르면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아도 뭘 고르라는지 몰라서 틀린다. 그래서 이 학원 레벨테스트는 주니어토플 문제를 풀어보고 가라는 조언들을 한다. "XX야, 이 문제가 나오면, 이 대화가 무슨 뜻인지 고르라는 거야." 약간의 암기식 훈련을 하고 가면 점수가 훨씬 잘 나온다. 초등학교 때 infer 수준의 단어를 알리도 만무하고, 벌써 이런 훈련을 시키나 싶기도 하지만, 이런 걸 안 하고 가면 아이가 원래 수준보다 훨씬 쉬운 반에 배정돼버린다.


나는 학원들이 이걸 모르리라고는 생각 안한다. 그래서 레벨을 안 주는 것이라는 일부 학부모들의 해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학원의 레벨테스트의 목적에 의문을 갖게된 경험은 또 있다. 작년에 또다른 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다섯 레벨 중 아이가 지필시험을 통해 중간 레벨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스피킹 테스트를 보더니 스피킹이 부족해서 그 밑에 레벨로 가야한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그 학원은 스피킹 클래스가 없다. "이 레벨로 가면 스피킹 보강을 해주나요?"라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끝나고 스피킹 레벨테스트 때 뭘 물어보더냐고 했더니 또 별 질문 아니다. 대답을 어찌했냐고 물어보니 "니네 학교 이름이 뭐니?"라는 질문에 "XX초요" 정도로 대답을 한 모양인데, 이걸 완전한 문장 구성을 못한다고 레벨을 깎았다. 아이는 부끄러워서 짧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 학원은 입학 때 정해진 레벨에 따라 졸업 시 목표가 다르다. 맨 윗반은 수능 1등급, 그 아랫반은 수능 2등급 뭐 이런 식인데, 그럼 중간반에서 들어간 애들은 그 트랙을 열심히 들어도 수능 1등급은 못 받는다는 얘기다. 다니면서 열심히 해서 레벨업을 하라던데, 그 학원 그 코스는 다니면서 레벨업이 안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서브 과외를 해야한다고 했다. 여기서 등록 포기.


이번엔 수학학원 공포체험. 3개월에 한 학기 진도를 나간다는 것도 빠른데 알고보니 그 3개월에 한 학기를 두 번 하는 학원이었다. 매일하는 '일테'에, 몇 점이 안되면 남아서 하는 클리닉에 재시험에. 아이는 점점 수학학원 얘기를 하면 귀신 본 얼굴이 돼간다. 비슷한 학원 다른 지점을 다니는 엄마가 "안되겠다"고 나처럼 포기선언을 했더니, "비학군지 어머니들이 모질지를 못하셔서 입결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하얗기 질려가는 애를 계속 공포체험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물러터진 엄마가 되기로 한다.


몇 번의 레벨테스트를 통해 나는 내가 학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기보다는 학원과 나의 목적이 다른 것 같다. 나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학원을 보내려고 하는 거였는데 학원들은 잘하는 아이들을 모으는 게 목적 같다. 입시 결과를 더 잘 내줄, 이미 많이 배웠거나 머리가 좋은 아이들.


이게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 윗반 아이들일수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성적에 대한 욕망도 크다. 그게 엄마들이 좋아하는 '면학 분위기'가 된다. 아무나 못가는 학원이라는 학원들의 공포심 조장은 그래서 계속 유효하다.


성적은 아직 그저 그렇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은 참 잔인하다. 아직은 잘 못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머리가 깨이면 쭉쭉 올라 상위권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기가 참 어렵다.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는 어른들보다, 어릴 때 대열에서 이탈하면 다시 대열에 합류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런 게 학부모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학교보다 학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유지하며, 내 아이의, 아이가 여럿인 집은 각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어느 엄마들은 동네나 학군지에 학원 밀집 상가에 되는대로 들어가서 수 십 군데를 직접 보고, 관찰하고 찾는다는데 이걸 '벽타기'라고 한다던가. 그렇게 해서라도 맞는 학원만 찾아진다면 진짜 암벽이라도 탈 사람들이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아닌가. 저 많은 학원 중에 왜 갈 학원이 없는 건지, 학원 잘못인지, 애 잘못인지 내 잘못일까, 사회의 잘못일까. 학원의 레벨테스트가 계속될수록, 나는 귀신의집이 따로있나, 레벨테스트나 공포체험이나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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