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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Sep 16. 2020

통속적인 발라드를 듣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침저녁 공기가 차가워졌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아직 내 옷장 한편엔 여름옷들이 수두룩하다. 긴 팔 옷을 마련해두기도 전에 가을이 찾아온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이내 옷장 정리는 포기하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최근 나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힘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나오는 이 시점에 누군가에게 내 하소연을 하면 "너만 힘든 것 아니야"라고 적절한 위로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힘들었다. 부모님에게 내 상황을 말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어서 나 혼자서 크기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더 속상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방황의 터널을 절반 정도 빠져나왔고, 정신 차려보니 가을이 왔다. 


올해 나의 일상은 꽤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힘들었던 출퇴근길 대신 재택근무를 했던 날이 대부분이었고, 지난달부터는 일보다 휴식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났다. 이런 일상 말고도 바뀐 것은 매우 많다. 


나는 얼마 전부터 정통 발라드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나는 출퇴근길에도, 재택근무를 할 때에도, 아무 계획 없이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에도 늘 음악을 들었는데 그때마다 듣는 음악은 거의 유사한 장르였다. 그 어떤 때에도 통속적인 발라드가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 적은 없다. 흔해 빠진 사랑 얘기와 이별 얘기를 늘어놓는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니라며 일부러 멀리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다지 빠져들었던 노래도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남자 솔로 가수의 발라드 라이브 영상을 보던 중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사를 듣고 옛 연인이 생각났다거나 지금 현재의 사랑에 대한 기쁨 혹은 좌절에 대한 감정도 전혀 아니었다. 희미한 노랫말 뒤에서 들려오던 멜로디가 어딘가에 숨어있던 내 감정선을 건드렸던 것 같다. 


통속적인 발라드 멜로디가 전해주는 이상한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그 감성은 때론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통속적인 가사가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음악도 그랬고, 영화에서도 통속적인 사랑을 얘기하거나 그 흔한 신파의 한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되면 자연스럽게 멀리했었다. 그럼에도 최근 내 음악적 취향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면 내 멘탈이 그동안 수 차례 흔들리고 갈라지다가 이전보다 매우 약해졌기 때문인가 싶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것은 통속적인 멜로디가, 그 감성이, 또는 어떤 가사 한 줄이 내게 필요했던 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쉬지 않고 발라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그 순간만큼은 (혹시나 눈물을 또 흘리게 되더라도)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고 감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멀리했던 감정, 혹은 그 취향에 대해 얘기하고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사람들이 혹시나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약간의 아프고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은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한 상황이다. 내가 혹시 이전에 주변의 힘든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하진 않았을까 라고 의심해볼 수 있는 이유다. 혹시나 그러했다면, 누군가 나의 위로를 바라고 있던 순간이 있었는데 내가 스쳐 지나간 순간이 있다면 그때의 내 불찰로 지금 내가 잠시 힘들어졌을 수도 있으니 더 이상 미련을 두거나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발라드 음악은 BGM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침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 한 줄이 오늘 지친 마음을 다시 한번 위로하고 있어 급히 받아 적어본다.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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